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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권도

마태복음 2024. 10. 11.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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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기술적 근원3. 이소룡 사망 이후 분파4.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절권도 철학5. 기타
5.1. 절권도 사용 캐릭터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 Jeet Kune Do[1]
절권도는 궁극적으로, 작은 기술들의 집합체가 아니라 고도로 발달된 정신과 육체의 산물이다. 절권도는 이미 발전된 모습에서 더 큰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모든 것은 처음부터 우리 안에 항상 존재했다. 한 번도 잃어버렸던 적이 없지만 우리의 잘못된 습관 때문에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절권도는 기술을 익히는 차원이 아니라 영적 통찰력과 훈련에 관한 무술이다.

이소룡 저, 정용준 옮김, 『절권도』, 서울, 인간희극, 2017, p.267.

이소룡이 창시한 무술. 딱히 고유한 커리큘럼이나 형태가 없기에 하나의 무술철학으로 보기도 한다. 애매모호함을 배격하고 극실용을 추구했던 그의 무술사상에 기반을 하는데, 그 배경에는 이소룡이 중국무술 특유의 형이나 투로 수련 등을 극히 싫어했다는 점이 있다. 실용적이지 못 할 뿐더러, 수련생들이 편협된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2]

'절권도'라는 이름이 붙여지게 된 계기는 이러하다. 상술된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이소룡은 형태나 이름, 특유의 유파에 구속되기를 정말 싫어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처음 이소룡이 절권도를 정립해나갈 때에는 자신이 창시하게 될 무술에 이름을 붙이면, 그 이름에 구속되어 수련생들이 일종의 편견을 가지지 않을까까지 걱정해서[3][4] 처음에는 '과학적인 길거리 싸움' 정도로 부르려고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보다 본질적이고 자신이 원하는 경지의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영감을 얻기 위해 각종 스포츠 서적을 읽기 시작하는데 그 중 이소룡이 가장 마음에 들어한 것이 펜싱이었고 펜싱의 플레이 방식을 자신의 싸움에 도입해보고 싶다고 했다.[5] 그래서 자신의 동료 댄 이노산토에게 "내가 창시할 무술은 'Intercepting fist'나 'Intercepting way'로 이름 붙이고 싶어. 광둥어로는 (상대의) 주먹을 차단하는 방법이라는 뜻의 절권도-Jeet Kune Do가 되겠지."라고 했고 이노산토는 "그럼 약자는 JKD겠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소룡은 JKD라는 약칭이 마음에 쏙 든다며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절권도 자체는 '이러이러한 것이 절권도다.' 같은 식으로 보긴 어렵고, 그냥 이소룡의 무술에 대한 철학으로 보는 것이 실제와 좀 더 가까울 것이다.[6]

여기까지 읽어봤으면 격투기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쉽게 알 수 있을 텐데, 이소룡의 이러한 사상을 물질적, 기술적으로 가장 정확하게 담아낸 게 종합격투기[7][8]이다. 그래서 이소룡을 현대 MMA의 아버지라고 과도하게 칭찬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지나친 팬심이 작용한 것이며 사실로 보기엔 근거가 부족하다. 방송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현대 종합격투기와 비슷한 경기나 대회, 무술인 등은 이소룡 이전에도 세계 곳곳에 있었다. 쉽게말해 이소룡이 지향하던 실용적인 격투 이론과 가깝게 맞아 떨어진 것이 MMA라고 할 수 있다.

2. 기술적 근원[편집]

이소룡 본인이 배운 무술과, 다른 무술가들과의 교류로 얻은 스타일을 자신의 몸에 맞춰 준판쿵후(振藩功夫, 진번공부)[9]로 체계화시켰는데, 이는 60년대의 이야기이고, 70년대에 이소룡이 사망 직전까지 만든 절권도는 이와는 기술적으로 많은 부분이 다르다고 한다. 그러나 이소룡 개인이 워낙 유명한데다, 절권도를 배우는 사람들도 영화 속 이소룡의 모습을 기대하는 까닭에, 실제로는 도장에서 두 가지를 다 가르치거나, 준판쿵후를 주로 가르치는 도장들이 많다고 한다. 절권도를 하는 연예인으로 유명한 장혁이 브라운관에서 보여주는 절권도 동작들은 절권도가 아니라 준판쿵후에 더 가깝다.

게다가 이소룡이 70년대 이전에 만든 교본과 자료들마저 이소룡 사후 마구 섞여서 사용되는 관계로 구분이 더욱 힘들다고 한다. 여태까지 그의 손기술은 영춘권, 발기술은 태권도의 영향을 받았다는 식으로 전해졌으나, 실제로 그런 것은 진번쿵후의 모습이라고 하며, 이 또한 실제 배운 사람들이 보여주는 준판쿵후를 접한 사람들에 의하면, 그런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다큐멘터리 <I AM BRUCE LEE>에서 댄 이노산토가 회상하길 이소룡이 절권도를 정립할 때 "영춘권의 이해를 바탕으로 영춘권을 초월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가장 오래 수련했던 무술답게 영춘권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절권도 철학에서는 영춘권과 달리 단타를 넣더라도 강하게 넣는 것을 추구하며, 트래핑을 하는 것보다는 회피를 중요시한다. 때문에 영춘권의 스타일과도 크게 다르다. 애초에 '절권도의 스타일'이란 존재하지 않으니. 대한민국 절권도 총본관에 문의해본 쪽에서도, 영춘권의 스타일을 버렸다고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영춘권을 이해하고는 단어 그대로 초월해서 영춘권의 틀에서 탈피한 것이다.

상기했듯이, 절권도하면 미친 듯이 빠르고 화려한 후밧 및 트래핑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으나, 이는 영춘권의 영향을 받은 준판쿵푸의 흔적일 뿐, 절권도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절권도 정립과정에서 후밧, 트래핑, 치사오 등은 비실용적이라 판단하여 배제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시범공연 등에는 더없이 좋은지라, 테드 웡 계열 절권도라도 지도자가 개인적으로 배워 익히기도 한다. 그러나 이때도 동영상 촬영이나 대중 앞에서 시연할 때, "지금 하는 건 진번쿵푸지, 절권도가 아니다"라는 걸 확실히 명시한다. 만약 후밧이나 트래핑을 너무 강조해서 가르친다면 가짜일 가능성이 높으니 주의하자.


1968년 LA해변에서 이준구 사범(오른쪽)이 이소룡에게 태권도 발차기를 시연하고 있다.#

태권도 연관설의 경우, 이소룡과 교류를 하던 이준구 사범이 발차기를 가르쳤다는 말이 있었으나, 이소룡이 이준구와 만난 것은 64년경의 롱비치 무술대회[10]에서였으며, 댄 이노산토의 말에 따르면, 이소룡은 그 이전에 이미 발차기의 고수였다고 한다. 정확히는, 중국무술의 북파권법계열 발차기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11] 그러나 이소룡이 다른 유파의 기술을 배우는 데에 스스럼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밖에 펜싱의 기법들도 절권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댄 이노산토가 배운 무술인 필리핀 무술의 번역이 잘못되어 펜싱이라 알려졌다는 설도 있었으나, 이노산토 본인이 한 얘기[12]에 따르면, 이소룡과 이노산토가 얘기하던 중에 이소룡이 "펜싱에서 가장 효과적인 카운터 법은 스톱히트(Stop Hit: 패리(parry: 슬쩍 피하거나 받아넘기는 것)하지 않고, 한 번에 공격해서 적을 막는 것)"라고 얘기했고, 이런 방식에 영향을 받은 싸움법을 절권도에 도입했다고 한다.[13]

이소룡의 무술관을 보여주는 일화로, 브랜든이 태어났을 때, 미국인 제자가 아들에게 어떤 무술을 가르치겠냐고 물었다.
이소룡: 가장 먼저 체조를 가르칠 거야. 균형감각과 유연성을 키워주니까.
제자: 그 다음엔?
이소룡: 글쎄, 권투가 좋겠지. 펀치력과 스피드를 발달시키니까.
제자: 그 다음엔?
이소룡: 좀 더 성장하면, 레슬링을 권하겠네. 근력과 지구력에 최고니까.
제자: 발차기는 안 가르칠 겁니까?
이소룡: (웃으면서) 본인이 원한다면 모르지만, 내가 따로 가르칠 생각은 없네.

어떻게 보면 타격과 그래풀링 기술이 총동원되어 만들어질 미래의 무술 종합격투기의 성립 방향[14]을 그 당시에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한 혜안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살아있었다면 브랜든 리가 실전무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정말로 반드시 필요했을 것들이다.

또한 채리불권(蔡李佛拳)의 노사(老師)들의 말에 의하면, 이소룡의 절권도에는 영춘권, 채리불권, 이소룡의 아버지가 익힌 홍권(紅拳/洪拳)[15]이 모두 녹아들어있다고 한다. 채리불권도 정식으로 배웠던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인터뷰를 참조하자.

다만 유튜브에서 절권도 관련 영상을 찾아보고 '절권도의 스트레이트는 이렇구나.' 같은 식의 생각을 갖게 된다면 그는 일종의 편협된 생각이며 이소룡 본인이 지향하던 바가 아님을 알아줬으면 한다. 현재 절권도 도장에서 가르치는 스트레이트는 십중팔구 직권[16]으로 배울 것이다. 이는 이소룡이 정권보다는 직권이 더 빠르게 반응할 수 있고 더 길게 나갈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인데 이에 대해 정권으로 뻗는 스트레이트는 절권도의 스트레이트가 아닌가라고 생각한다면 그렇지는 않다.

우선 절권도에 대한 이소룡의 사상을 들여다보자. 이소룡은 주먹과 발을 '무기'로 봤기 때문에 무기는 앞에 놓인 채로 빠르게 반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입각해 오른손잡이임에도 사우스포 스탠스로 수련했다.[17] 단 이소룡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절권도의 모습이나 개인적인 철학을 담아 놓은 7권의 노트를 바탕으로 재구성 된 저서 'Tao of Jeet Kune Do'에 의하면, 수련생이 오른손잡이고 오소독스 스탠스를 편하게 여긴다면, 또한 오소독스 스탠스로 수련하길 원한다면 별 상관없이 그를 존중한다는 식의 서술이 되어있다. 다만 사우스포에서 수련하는 것에 동의한다면 기존에 오소독스에서 수련을 했더라도 찻잔을 비우듯이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스타일을 버리고 수련할 것을 명시했다.

즉, '이소룡의 절권도'가 아닌 '자신들만의 절권도'를 추구한 것이고 실제로 그렇다. 예를 들어보자. 태권도를 오래 수련하다가 테드웡 절권도에 입문한 수련생이 있다고 치자. 그가 스파링 중에 습관적으로 내려차기를 해서 상대를 맞췄다면 그것은 태권도의 발차기이기 때문에 절권도라고 볼 수 없는가? 아마 절권도 도장 중에 내려차기를 배우는 도장은 없을 것이지만 이소룡이 생전에 남긴 철학에 의하면 그 또한 수련생의 절권도인 셈이다. 유튜브에서 절권도 관련 영상을 찾아봤다면 그것들을 '절권도'라는 틀에 가두고 보지 않고 '이소룡이라는 한 개인의 무술'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 '이소룡 개인의 방식'인 절권도를 가르치는 도장들은 사이비인 것인가 한다면 그 또한 잘못되었다. 이소룡의 방식을 이어받아 가르치는 것은 절권도라는 철학 체계를 구상한 이소룡을 한 명의 창작자로서 존중하는 것이며 수련생들도 그의 방식을 배울 것을 원한다. 응용하는 것과 실제로 수련하는 것은 수련생들 개개인에게 남겨진 숙제일 뿐이다.

이소룡이 형태가 없는 무술을 추구했다고 해서 절권도라는 철학체계의 정체성을 무시하는 것은 잘못됐기 때문이다. 이소룡 개인의 방식의 절권도를 수련함은 수련생들에게 '이 상황을 빠져나오는데 이런 선택지도 있구나' 식의 깨달음을 주는 것뿐이고 상술했듯이 그것을 갈고닦을지 자신의 방식으로 개척할지는 수련생이 선택하기 나름이다. 이소룡에게 가르침을 받았음에도 이노산토의 절권도와 테드 웡의 절권도가 사뭇 다르지만 둘 다 정통 후계자로 인정받는 이유가 뭐 때문이겠는가.

3. 이소룡 사망 이후 분파[편집]

상술했듯이 절권도 정립 당시 이소룡은, 기술적 제한이 거의 없이, 수련생 개개인이 자신에게 맞는 파이팅 스탠스와 기술을 배우는, 그것도 지도자와 수련생이 1:1로서 수련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진번쿵푸가 워낙 유명한데다, 이소룡이 생전에 작성했던 교범들이 대부분 진번쿵푸시절에 나온 거라, 현재에는 개념을 헷갈리는 도장들도 많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영화 속 모습이 너무 강렬했던지라, 현재에는 이소룡 영화 동호회 같은 식으로 전락해버린 도장도 꽤나 많은 편이다. 심지어 절권도 교본이나 중국무술 용품 등을 팔아먹으려고 가짜 도장을 차린 뒤, 도장 주인도 자기가 모르겠다면서 영화를 보라는 식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다른 중국무술을 배웠던 지도자들이 절권도에도 투로나 품새를 만든다든지, 중국무술식의 수련체계를 들여온다든지 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현재 절권도는 크게 3개의 분파로 나뉜다. 이소룡이 생전에 지도자 자격증을 부여한 제자들[18]의 스타일이 각기 다르게 발전했기 때문인데, 첫번째는 이소룡의 초창기 제자였던 제시 글루버 계열인 논 클래식 쿵푸[19]
두번째는 이소룡과 함께 절권도 정립 과정에서 함께 연구한 그의 절친 댄 이노산토 계열인 컨셉 절권도
마지막 세번째는 절권도 정립 이후에 배운 이소룡의 스파링 파트너이자 마지막 개인 제자 테드 웡 계열인 오리지널 절권도[20]

제시 글루버를 계승한 https://www.youtube.com/watch?v=iBTM6_l-Gdk 토미 카루더스 계열 절권도 는 실전을 굉장히 중요시하여 눈을 찌르는 핑거잽과 낭심, 슬개골 타격에 중점을 둔다. 이소룡의 최고레벨의 절권도는 간단함이다. 하는 말을 중점으로 두어 화려한 수풀이보다는 기본 기술을 다양한 상황에서 응용할 수 있게 수련하는 데 중점을 둔다. 후술할 테드 웡 계열과 얼핏 비슷해보이지만 세세한 면에서 차이가 있다. 토미 카루더스 계열의 절권도는 천안시에서 권소룡 관장이 오리지널 절권도 스쿨이라는 체육관에서 가르친다.

소위 컨셉 절권도라 불리는 댄 이노산토 계열은, 이소룡의 무술철학적 측면에 중점을 둔 절권도를 수련한다.[21] 반면 테드 웡 계열은 진번쿵후가 절권도로 정립된 이후의 이소룡이 생전 구사하던 절권도에 가깝다고 한다.[22] 테드 웡 계열 절권도는 강남의 하철관장과 과천의 이재성 관장이 각각 도장을 운영하고 있다.
댄 이노산토 계열은 아직 본인이 무술가로서 건재해 아직 후계자가 지목되지 않은듯 하나, 실질적 수제자인 '폴 뷰넥'이 뒤를 이을 준비를 하고 있다.[23]

테드 웡과 패트릭 챈을 사사 이재성 계열의 체육관이 과천 신사동[24]에 위치해 있다.

국내의 댄 이노산토 계열은 폴 뷰넥을 사사한 이원종 강사와 프란스 스트로븐으로부터 사사한 대한 카팝 크라브마가협회의 양창국(양준영+양창곡 동일인물)협회장이 있으며 폴 뷰넥과 프란스 스트로븐은 댄 이노산토로부터 절권도와 칼리&아르니스&에스크리마를 사사했다. 프란스스트로븐은 팡가못이란 이름으로 가르치고있다.(팡가못은 세부아노어로 맨손이란 뜻)

이 외에도 대만에 본관을 둔 진륭 계열도 있는데 이쪽은 논란이 많다. 진륭은 본인이 어릴 적 이소룡이 제작하던 영화의 꼬마 스태프였는데 촬영 중간중간 짬이 날때마다 가르침을 청하고 이후 수련을 쌓으며 체계를 정립했다고 주장하나, 그게 사실이라도 보통은 겨우 그런 걸 가지고 전승자라고 보지는 않는다. 또한, 이소룡은 완벽주의자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런 그가 영화 촬영 중간중간 꼬마 스태프에게 무술을 전수할만한 여유가 있었을지도 의문이다. 또한 이소룡의 부인 린다 리 여사도 진륭과 이소룡이 만남조차 없었다는것을 인정하였으며, 진륭이 자신이 이소룡의 제자라고 거짓말을 하며 절권도를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사실을 알고있기때문에 만남을 청하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진륭이 만남을 거부하고 있는중이다. 진륭을 제외한 모든 이소룡의 제자들은 진륭이 이소룡의 제자가 아닌것을 알고있다.

이노산토나 테드 웡이 서로 다른 계열이면서도 둘 다 '절권도'로 인정받는 것은 이소룡의 철학에 입각한 수련과 이소룡이 생전에 그들에게 부여한 지도자 자격증 때문이다. 진륭 계열에서 중점을 두어 가르치는 것은 트래핑과 경, 대동, 힘의 배합 등에 대한 이론이다. 이소룡은 "영춘권을 이해함으로써 영춘권을 뛰어넘는다."라고 했지 영춘권을 하라고 하진 않았다. 이노산토 계열에서도 트래핑을 가르치지만 절대 주가 되진 않는다.

그럼에도 진륭 계열 절권도관들이 망하지 않는 이유는 "체계성"이다. 진륭 계열에서 가르치는 힘을 사용하는 원리와 상황에 대한 판단 등 커리큘럼에 굉장히 체계적이고 기초논리도 탄탄하다. 심지어 "절권도 계열 중 진륭계열이 가장 배울 만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25][26] 따라서 진륭의 무술을 절권도라고 하는 것은 사칭이며, 별개 무술이라고 보는 게 적절할 것이다. 진륭이 비록 사기꾼이라 해도 무술을 이해하는 안목은 상당히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시에 창작자로서의 이소룡의 권위를 철저히 짓밟는 것이지만. 이러한 연유로 격투갤러리 등에서는 아예 '진륭권'이라고 신랄하게 까이는 중이다.

한국에서는 노경열[27]교련이 진륭의 절권도를 전승받았다. 한국 최초로 절권도관을 열었던 김종학 관장 역시 진륭의 절권도를 전승 받았으나 몇년 지나지 않아 진륭과 연을 끊고 테드 웡의 제자로 들어간다.[28] 테드 웡이 별세한 후에는 댄 이노산토의 제자로 들어가 수련을 이어가고 있다[29] 시스테마로 유명한 유대경 또한 진륭 계열 절권도를 익힌 적이 있다.

절권도는 도복이나 정해진 수련복이 없기 때문에 띠가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단이나 급의 구분이 없다. 따라서 "나 절권도 X단이야."라고 말한다면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이비. 따라서 지도자가 되려면 이노산토나 테드 웡 계열 체육관에서 사사해 랭크를 부여받고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지도자 자격증도 한 번 취득하면 장땡이 아니라 견습~마스터 지도자까지 레벨이 세세하게 나뉜다고 한다.

4. 영화 속에 등장하는 절권도 철학[편집]

절권도는 무형의 철학에 가깝고, 이소룡은 이 철학을 영화에 끝없이 투영하고자 했다. 미국자본으로 만든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인 《용쟁호투》에서 그는 시나리오 문제로 끊임없이 제작사 워너브라더스와 마찰을 일으켰는데, 그 이유가 그의 철학을 집어넣기 위해서였다고…. 그 덕에 어느 정도 그의 무술에 대한 철학이 담긴 장면들을 볼 수 있다.

초반에 그가 걸어가던 어린 수련원을 지적하는 장면을 보자.


달은 목표, 즉 적을 제압하는 것이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무술, 형식을 상징한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집중하면 달을 볼 수 없다. 중국 무술들이 형식에만 치우침에 반대하여, 형식이 없는 실전무술을 재창한 이소룡의 철학을 잘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초반 오프닝 시퀀스 이후 배의 장면을 보자.


이소룡의 무술 철학에 있어서 목표는, 위에 서술하였듯이 적을 제압하는 것이었고, 궁극적으로는 싸우지 않고 제압하는 것이었다. 즉, The art of fighting without fighting. 절권도의 궁극적 도달점이다.

5. 기타[편집]

이소룡 왈, "절권도는 무법(無法)으로 유법(有法)을 상대하고, 무한(無限)으로 유한(有限)을 상대한다." 절권도의 철학을 가장 잘 나타낸 한 문장이다. 이소룡 특유의 함축적인 표현 때문에 주로 영어보다는 원문으로 쓰인다.[30]

다만 전통을 무시한 본능 위주의 무술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그 영향도 제법 받아 각종 페이크 공격이 가미된 실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당산대형(1971)》을 찍었을 당시, 대만 무술인들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고, 그때 팔극당랑문의 소욱창 노사(1940~)와의 만남이 영향을 줬다 카더라. 그에 관한 자세한 일화

5.1. 절권도 사용 캐릭터[편집]

6. 관련 문서[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