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워도 쪄도, 언제나 맛있는
가리비는 구이를 비롯해 다양한 식재료로 사용된다. 연탄불 위에서 가리비가 맛있게 익고 있다.
연체동물 부족류에 속하는 가리비는 ‘헤엄치는 조개’로 알려져 있다. 조개가 헤엄친다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겠지만, 위협을 받아 빠르게 이동해야할 때는 두 개의 패각을 강하게 여닫으면서 분출되는 물의 반작용을 이용해 수중으로 몸을 띄워 움직인다. 이때 조개껍데기를 여닫는 동작을 빠르게 되풀이하면 토끼가 깡충깡충 뛰어가는 듯 보인다. 패각을 여닫는 기능을 하는 근육을 패주(貝柱)라고 한다. 가리비의 패주는 다른 이매패류에 비해 크고 근육이 발달돼 있어 훌륭한 식재료로 대접 받는다.
가리비는 빠르게 이동해야할 때는 두 개의 패각을 강하게 여닫으면서 분출되는 물의 반작용을 이용하여 움직인다.
껍질이 부채 닮아 부채조개
가리비는 가리비과에 속하는 조개류로 전 세계적으로는 약 50속, 400여 종 이상이 있다. 이들은 연안의 얕은 수심에서부터 매우 깊은 수심에 이르기까지 분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전 연안에 걸쳐 살아가는 비단가리비, 동해안이 주무대인 큰가리비(참가리비)와 주문진가리비, 제주도 연안에서 주로 발견되는 해가리비, 동해안과 경남 연안에 걸쳐 서식하는 국자가리비 등 12종이 발견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미국에서 중국을 거쳐 이식된 해만가리비의 양식이 성행하고 있다. 이들의 구별은 패각의 크기와 생김새, 패각에 있는 방사선 모양의 무늬 또는 돌기(방사륵)의 줄 수 등에 따른다.
(왼쪽)사가리비 외투막 가장자리에 있는 여러 개의 푸른색 점은 가리비의 눈이다. 가리비는 30~40개의 눈알과 주변의 촉수를 이용해 주위를 경계한다. (오른쪽)바위 틈에 몸을 숨긴 가리비가 촉수를 내밀어 주위를 경계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가리비과에 속하지만 종에 따라 생식 방법이 다르다는 점이다. 참가리비, 고랑가리비, 비단가리비가 암컷과 수컷이 따로 있는 자웅이체라면, 해만가리비는 한 개체에 암컷과 수컷의 생식소가 같이 있는 자웅동체다. 가리비는 패각이 원형에 가까운 부채모양이라 한자로는 해선(海扇) 또는 선패(扇貝)라 쓴다. 우리나라 방언으로는 부채 모양을 닮았다 해서 부채조개, 밥주걱을 닮았다 해서 주걱조개, 또는 밥조개라 불린다.
패각의 색깔은 붉은색, 자색, 오렌지색, 노란색, 흰색 등으로 다양하다. 대개 아래쪽 패각이 상판 보다 밝은 색이며 무늬가 더 적다. 패각은 주로 굴 양식장에서 굴의 종묘를 붙이기 위해 재활용되며, 공예품의 재료 또는 장신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가리비란 이름의 유래에 대해 혹자는 일본어로 조개를 가이(ガイ)라고 하는데, 가이에 날아다닌다는 의미의 비(飛)자를 붙여 가리비가 된 것이라 설명하기도 한다.
(왼쪽)미국에서 중국을 거쳐 이식된 해만가리비의 모습이다. 이들은 바다 환경에 강하고 양식기간도 짧아 경제성이 높다. (오른쪽)가리비 패각의 색깔은 붉은색, 자색, 오렌지색, 노란색, 흰색 등으로 다양하다.
자연산과 양식
시장에 유통되는 가리비는 대부분 양식이라 보면 된다. 해산물에 대해 자연산을 고집하는 사람도 있지만, 양식 가리비라 해도 자연산과 매한가지로 플랑크톤만 먹고 자라기에 맛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양식 방법은 어린 가리비를 바구니에 넣어 바다에 매달아 두는데 4~5개월 정도 된 것이 가장 맛이 좋다. 가리비는 구이, 찜, 탕, 죽, 국물요리, 젓갈 등의 식재료로 애용되며 신선한 가리비는 회로도 먹을 수 있다. 특히 큰가리비의 패주 부분은 예로부터 고급 식재료로 이용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통조림, 냉동품, 훈제품 등으로 개발되고 있다. 가리비에는 리신, 류신, 메티오닌, 아르기닌, 글리신 등의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해서 성장기 어린이에게 좋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칼로리와 콜레스테롤이 낮고 단백질과 미네랄이 풍부해 웰빙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왼쪽)시중에 유통되는 가리비는 대부분 양식이다. 양식 가리비라 해도 자연산과 한가지로 플랑크톤만 먹고 자라기에 맛에서는 자연산과 별 차이가 없다. (오른쪽)최근 들어 남해안 굴 양식장에서도 해만가리비, 비단가리비가 성공적으로 양식되어 어민 소득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가리비 양식은 어린 가리비를 바구니에 넣어 바다에 매달아 두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1979년부터 기업적인 종묘생산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양식이 시작되었다. 2000년 2천371톤이 수확되어 최대량을 기록했지만 이후 생산량의 감소로 늘어나는 수요를 맞출 수 없게 되자 많은 양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나라 가리비 양식의 최적지는 동해안으로 주로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큰가리비가 대상이었지만, 최근 들어 남해안 굴 양식장에서도 해만가리비, 비단가리비가 성공적으로 양식되어 어민 소득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는 가리비가 굴과 함께 양식할 수 있는데다 적조에도 강하기 때문이다.
탄생 설화를 품은 조개
가리비는 한번에 1억 개가 넘는 알을 낳아 조개류 중에서 최고다. 그래서인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탄생의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보티첼리의 작품 <비너스의 탄생>은 미의 여신 비너스가 가리비를 타고 육지에 도착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서는 딸을 시집보낼 때 새 생명의 탄생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가리비 껍데기를 싸 보내는 풍습이 있다.
보티첼리는 <비너스의 탄생>을 통해 생명의 근원인 바다에서 태어난 미의 여신 비너스가 가리비 패각을 타고 키프로스 섬의 해안에 도착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왼쪽에 서풍의 신 제피로스와 그의 연인 클로리스가 보인다. 제피로스는 비너스를 향해 바람을 일으켜 해안으로 이끌고 있으며, 키프로스 섬의 해안에는 계절의 여신 호라이가 옷을 들고 비너스를 맞고 있다.
가리비는 탄생의 의미뿐 아니라 뛰어난 맛과 영양 성분으로도 정평이 나있다. 단맛을 내는 아미노산인 글리신이 많이 들어있는데다 타우린 성분이 풍부해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맛과 영양 성분 때문에 중국에서는 가리비를 두고 중국 월나라 미인 서시의 혀에 비유하여 서시설(西施舌)이라 불렀다. 중국인들은 서시를 포함하여 양귀비, 초선, 소군을 역사상 4대 미인이라 칭송하고 특별한 요리에 이들의 이름을 붙이곤 했다.
가리비가 서시의 혓바닥이라고 불리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시는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 월(越)나라의 미인이었다. 당시 오(吳)나라 왕 부차와 패권을 다투던 월나라 왕 구천은 오나라와의 싸움에서 대패하자 미인계를 쓰기 위해 서시를 부차에게 보낸다. 이후 부차는 서시의 미모에 빠져 국정을 소홀히 하게 되고 결국 월나라에게 멸망하고 만다. 서시는 오나라를 멸망시킨 1등 공신이었지만 막상 부차가 죽고 나자 운명이 난처해졌다. 서시의 미모 때문에 구천 역시 나라를 망칠까 구설에 올랐기 때문이다. 결국 월나라 왕후의 명에 의해 서시는 몸에 돌이 달린 채 바닷속으로 던져져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그 후 바다에서 사람 혀 모양을 닮은 조개가 잡히기 시작했는데 속살의 형태가 사람 혀처럼 생겼고 맛이 유달리 부드럽고 신선하다해서 사람들은 이 조개에 죽은 서시의 이름을 붙였다. 서시의 이름을 따온 또 다른 진미로 서시유(西施乳)가 있다. 이는 복어 껍질과 점막 사이의 살 부분을 일컫는데 이 부분이 서시의 젖가슴처럼 뽀얗고 부드럽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 4대 미인의 이름에서 따온 요리
서시설(西施舌) : 가리비 조갯살을 말한다. 서시가 빠져 죽은 바닷가에서 잡혀 올라온 가리비 조갯살이 사람 혀와 흡사하고 맛이 유달리 부드럽고 신선하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귀비지(貴妃枝) : 여지란 중국 남방에서 나는 과일로 흰색의 쫄깃한 과육은 달면서도 독특한 맛이 난다. 여지는 당나라 현종의 비인 양귀비가 가장 즐겨먹던 과일로 궁중 요리사들은 이 여지를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까 궁리 끝에 귀비여지라는 요리를 만들어 냈다. 귀비여지는 여지에 전분과 계란으로 반죽한 튀김옷을 입혀 튀겨낸 후 꿀과 토마토소스를 넣고 볶아낸 요리다. 새콤달콤한 맛에 빛깔이 산뜻해 남녀노소 모두 좋아한다.
귀비계시(貴妃鷄翅) : 양귀비가 귀비여지와 함께 평생 동안 즐긴 요리다. 하루는 술에 취한 현종이 양귀비의 ‘하늘을 날고 싶어요’라는 말을 하늘을 나는 요리를 먹고 싶다는 말로 잘못 알아듣고 궁중요리사들에게 요리를 만들 것을 지시했다. 요리사들은 하늘을 나는 것은 새의 날개이고 현종과 양귀비가 술에 취했다는데 착안해 튀긴 닭 날개에 포도주를 넣고 끓여내 노란 빛깔과 붉은 빛깔이 한데 어우러진 요리를 만들자 현종과 양귀비가 크게 흡족해 귀비계시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초선두부(貂嬋豆腐) : 두부와 미꾸라지를 같이 넣고 서서히 끓이면 미꾸라지가 뜨거움을 피하기 위해 두부 속으로 파고드는데 이를 요리로 만든 것이다.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초선은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하는데 이용됐던 비운의 미인이다. 호사가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로는 초선에 빠져 여포에게 죽임을 당하는 동탁의 모습이 초선의 속살로 비유되는 흰두부 속으로 파고 들어가 죽는 미꾸라지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소군오리(昭君鴨) : 초나라에서 태어난 왕소군은 정략결혼으로 서역에 보내졌는데 그곳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나날이 여위어 갔다. 그리하여 궁중 요리사들은 온갖 정성을 다해 요리개발에 나섰는데 어느 날 당면과 채소를 넣고 오리국을 끓여냈더니 그제야 소군이 음식을 먹기 시작해 이 요리를 소군오리라 불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