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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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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ns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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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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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ax ginseng C.A.M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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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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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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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씨식물문(Angiosperm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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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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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쌍떡잎식물아문(Eudicotid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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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군(Asterid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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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목(Apia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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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릅나무과(Araliace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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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속(Pana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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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ax ginse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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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人蔘)은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약용식물로, 약용하는 뿌리가 꼭 사람처럼 생겼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국 법령은 "오갈피나무과(科)[2] 인삼속(人蔘屬) 식물"로 정의한다(인삼산업법 제2조 제1호). 영어로는 ginseng [ˈdʒɪnsɛŋ], 학명으로는 Panax ginseng. 표준 중국어로는 人参(런선, renshen), 일본어로는 高麗人参(고라이닌진), 혹은 朝鮮人参(조센닌진). にんじん(닌진)도 인삼이란 뜻이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당근의 의미로 쓰이므로 전자와 같이 따로 표기한다.
학명인 "Panax ginseng"기준으로 화석상의 기록은 백악기 초기 중국 남부지방에서 퇴직된 지층에서 발견된 것이 최초이다.#
그냥 인삼이라고 하면 재배된 인삼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으며, 깊은 산에서 자라는 자연산은 특별히 산삼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본래는 재배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작물로, 한의학의 고전인 상한론(傷寒論)에 나오는 '인삼'은 전부 산삼을 가리킨다.
1392년[3] 고려시대에 인공재배에 성공한 이래 쭉 인공재배로도 잘 키운다. 자연산 산삼의 경우 재배 인삼에 비해 가격이 수백 배 이상 차이나다보니 전국의 산을 돌아다니며 오래된 산삼만 캐러 다니는 '심마니'라는 전문 채집꾼도 있다.
다년생식물이라 오래 묵을 수 있으며(자연산 한정), 오래 묵을수록 약효성분이 더 뛰어나다고 한다. ''연구 중 일환"으로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재배인삼은 몇 년 묵은 정도로는 큰 차이가 없고 수확시기에 따라 성분의 함량이 영향을 미친다. 5~6월 수확한 인삼이 진세노사이드 함량이 좀 더 높다. # 많이 오해를 하는데 인삼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다. 빠르게 자라는 인삼은 6년을 넘겨 살기 힘들고 7년 이상이 되면 보통 썩어버린다. 산삼이나 산양삼은 느리게 자라기 때문에 재배 인삼보다 더 오래 사는 것. 100년 근이라며 커다란 삼을 들고 찍은 사진은 대부분 중국산 인삼이다. 인증제도를 시행한 이후로 많이 사라진 사기수법.
인삼은 대부분 뿌리를 사용하고 열매는 그동안 종묘용으로만 사용할 뿐 쓸모가 없다고 여겨 버렸는데, 2016년 7월 인삼 열매가 알코올성 간질환 치료에 특효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기사 열매는 빨간 것이 꼭 산수유같이 생겼지만 조금 작으며 인삼 못지 않게 쓰다.
과거에도 잎과 줄기 부분을 말려서 절단하여 우려 마시는 차류 제품으로 판매한 기록이 있다. 현대의 연구에 따르면 인삼의 대표성분인 사포닌 계열 물질의 함량이 뿌리보다 높다고 한다.
인삼은 농작물 중에서도 특히 지력을 크게 소모하는 작물로 유명하다. 여기에는 오해할 소지가 있는데, 인삼은 비해에 굉장히 약하고 소모도 적어서 다비성 작물인 엽채류 등을 키운 땅에서는 인삼이 버티지를 못하고 썩어버리며, 인삼 농가에서는 기본적으로 6년 동안 웃거름 자체를 안 한다. 인삼이 땅의 양분을 다 소모한다는 속설은 인삼을 키워본 적 없는 사람들이 '지력 소모'라는 말만 듣고 지레짐작해서 퍼뜨리는 것에 불과하다. 인삼의 연작을 막는 가장 큰 이유는 인삼 잔여물이 분해되면서 발생하는 병원균 '시린드로카폰 데스트럭턴스(Cylindrocarpon destructans)'에 의한 "인삼 뿌리썩음병"이라는 질병 탓이 크다. 이 병균은 숙주인 인삼이 없어도 10년가량은 땅 속에서 버티기 때문에 아예 버린 땅 취급을 하고, 대신 땅콩이나 벼농사 등을 지으면서 윤작을 해왔다. 현대에는 기술이 발전해서, 아예 땅을 쪄서 균을 죽이는 훈증을 하거나[4], 길항균을 먼저 살포해 뿌리썩음병의 원인균이 번식하지 못하게 하는 방법도 사용한다.
영어명 ginseng의 어원에 대해서는 일본어 기원설이나 중국어 기원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인삼의 민남어 발음 (jîn-som 또는 jîn-sim)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인삼의 공식학명인 ginseng은 러시아 학자 칼 안톤 폰 메이어(Carl Anton von Meyer, 1795 ~ 1855)가 1843년 세계식물학회에 ‘Panax ginseng C. A Meyer"로 등록하면서 공식화했고,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650년경, 즉 17세기 중엽이다.
일본어 기원설은 유럽(포르투갈)이 동북아시아에서 명나라 다음으로 가장 먼저 접촉한 세력이 일본이었기 때문에 人参의 일본어 발음인 진산(JinSan)/진신(Jinsin)에서 나왔다는 설이다. 하지만 현재 일본에서는 人参이라고 쓰고 닌진이라고 읽고 있다.[5]
중국에서 인삼을 일컫던 말인 '상삼(祥參)'의 발음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널리 알려져 있어서 (주)한국인삼공사 홈페이지에서도 이 설을 소개하고 있지만, 상삼(祥參)의 중고음(약3~13세기)은 [zi̯aŋʂi̯əm]으로 발음 자체로는 ginseng에 비교적 가까운 것은 사실이나 ginseng이 서양에 소개되는 시기에는 [xiang], [xiong], [xing] 등으로 분화되어 ginseng의 발음과 들어맞지 않는다.
민남어가 중국어 중고음의 상당 부분을 현대까지 보존하는 점과, 유럽인들이 중국에 처음 도착한 지역이 광동어와 민남어가 널리 쓰이는 지역이었다는 점[6] 많은 민남어 사용자들이 홍콩, 마카오, 대만 등 중국 본토 외의 중화권이나 훗날 19세기에 청나라 남단에서 동남아시아(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등지로 진출해 유럽인들과 교류가 많았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민남어 유래설이 타당해보인다.
인삼의 공식학명인 ginseng은 러시아 학자 칼 안톤 폰 메이어(Carl Anton von Meyer, 1795 ~ 1855)가 1843년 세계식물학회에 ‘Panax ginseng C. A Meyer"로 등록하면서 공식화했고,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650년경, 즉 17세기 중엽이다.
일본어 기원설은 유럽(포르투갈)이 동북아시아에서 명나라 다음으로 가장 먼저 접촉한 세력이 일본이었기 때문에 人参의 일본어 발음인 진산(JinSan)/진신(Jinsin)에서 나왔다는 설이다. 하지만 현재 일본에서는 人参이라고 쓰고 닌진이라고 읽고 있다.[5]
중국에서 인삼을 일컫던 말인 '상삼(祥參)'의 발음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널리 알려져 있어서 (주)한국인삼공사 홈페이지에서도 이 설을 소개하고 있지만, 상삼(祥參)의 중고음(약3~13세기)은 [zi̯aŋʂi̯əm]으로 발음 자체로는 ginseng에 비교적 가까운 것은 사실이나 ginseng이 서양에 소개되는 시기에는 [xiang], [xiong], [xing] 등으로 분화되어 ginseng의 발음과 들어맞지 않는다.
민남어가 중국어 중고음의 상당 부분을 현대까지 보존하는 점과, 유럽인들이 중국에 처음 도착한 지역이 광동어와 민남어가 널리 쓰이는 지역이었다는 점[6] 많은 민남어 사용자들이 홍콩, 마카오, 대만 등 중국 본토 외의 중화권이나 훗날 19세기에 청나라 남단에서 동남아시아(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등지로 진출해 유럽인들과 교류가 많았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민남어 유래설이 타당해보인다.
세계 여러 곳에서 자라기는 하지만 한국에서 자라는 토종인삼으로 약효가 뛰어난 '고려인삼'이 유명하다. 인삼은 신농본초경에서 상약에 들어갈 정도로 고대부터 뛰어난 약재로 통했으며, 이미 삼황오제시대부터 불로장생하게 하는 약이라 하여 널리 사용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식물성 약재로서는 최상품에 들어가는 약재이다.
인삼의 명성은 이미 삼국시대에 당나라에까지 널리 알려질 정도였는데, 이 당시에는 고려삼, 백제삼, 신라삼(나삼)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통일신라대에는 중국이나 일본을 오가는 사신이 나삼을 지참했고 인기가 많았다는 사실이 삼국사기[7]나 매신라물해[8] 등 문서에 기록되었다. 신라의 문인 최치원은 생일에 조국의 약재인 인삼을 상관에게 바치는 '헌생일물장(獻生日物狀)'을 썼고 계원필경에 실려있다. 한국에는 남아있는 신라 인삼이 없지만 일본 나라시의 정창원에는 정창원 신라 인삼이 현존하고 있다. 해당 문서 참조.
고려 건국 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고려인삼으로 명칭이 굳어져 현대까지 이어진다. 한반도에서 산출되는 인삼을 조선도 한국도 아니라 특별히 '고려'인삼이라고 하는 것은 고려시대부터 인삼을 인공재배하였으며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조선 왕조가 들어선 이후에도 조선을 '고려'라고 불렀던 것이 유래로, 따라서 조선 인삼도 고려 인삼이라고 불렸다. 일종의 브랜드라고 볼 수 있다.
고려인삼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재배할 수 있다.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의 모후산(母后山) 일대가 본격적인 재배인삼의 발상지이며, 이 동복삼(同福蔘)이 개성상인들에 의하여 도입되어 개성이 드디어 인삼재배의 중심지가 되었다. 정조실록에 의하면 박유철(朴有哲)이 앞장을 서서 햇빛을 가리는 재배방법을 기업적으로 실시하였다. 옛부터 이미 중국은 남획으로 야생인삼이 거의 전멸 지경에 이르렀기에 천금을 주고도 못 살 정도였다고 하며, 당시 중국과 몽골에서는 고려인삼이 바로 그 옛날 진시황제가 그토록 찾아 해맸던 불사약이라고 굳게 믿었다고 한다.[9] 일본에서도 중국-한반도를 거쳐 의학서적을 받았기에 고려인삼 하면 무조건 만병통치약(?)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며, '인삼을 먹고 병을 고쳤는데 인삼 값을 갚지 못해 목숨을 끊었다'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이름난 작물이었다. 이 명성은 일본에 왔던 유럽인에게도 알려지는데, 한 유럽인은 집에 인삼을 보내면서 "이것은 같은 무게의 은만큼이나 값어치가 있으며 유통되는 모든 것은 전부 덴노의 소유다."라고 쓴 편지를 보냈다.
이렇기에 에도 시대에는 조선에서 인삼을 수입하기 위해 인삼대왕고은[10]이라는 순도 80% 은괴를 만들기도 했다. 당시 일본은 화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통용되는 화폐에서 은의 함량을 계속 줄여왔는데 당연히 일본 국내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조선이나 중국의 국제 시장에서 이걸 받아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은의 함량을 기준으로 거래를 했지만 계속 은의 함량이 떨어지자 결국 조선측에서 은을 결제용으로 받아주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원래 조선에서 일본의 저품위 은화를 받으면 그걸 다시 녹여 고품위로 제련한 뒤에 중국에 무역 결제용으로 지급했는데 이 비용이나 기타 여러 농간 등등으로 일본이 주장하는 함량보다 훨씬 낮게 인정해 준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일본이 손해를 보는지라 아예 처음부터 무역결제용으로 만든 함유량이 높은 고품위 은이 인삼대왕고은이다. 하지만 인삼대왕고은이 인삼 결제용으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고 실제로는 80% 이상이 중국산 백사[11]와 각종 중국산 견직물 대금으로 결제되었고 인삼 구입 용도로 사용된 양은 20% 미만이었다. 절반 이상이 백사 대금으로 사용되는 은에 인삼대왕고은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당시 일본 내부에서도 은의 함유량을 낮춘 화폐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무역결제용으로 고품위 은을 따로 만든다는 얘기를 들으면 이들의 불만이 폭발할 우려가 있었다. 그 때문에 목숨을 살리기 위한 인삼을 구입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어야 국내의 불만을 어느 정도 누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구입할 때는 시기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대략 은 한 근에 인삼 한 근 정도가 표준 가격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인삼 한 근에 쌀 16가마 정도라는 엄청난 가격이다. 참고로 현재 킬로그램당 은 가격이 약 55만원가량 하는데 인삼대왕고은은 순도가 80%이므로 210*0.8=168그램으로 계산해봐도 인삼대왕고은 120개면 현재 돈으로 약 1108만 8000원 가량 된다. 물론 당시에는 채굴 기술력 부족, 은의 국제 무역용 화폐로의 가치 등등으로 인하여 은의 값어치가 더욱 높았다. 그나마 인삼이 풍족한 편이었던(?) 조선은 은 20냥에 달했는데 이는 은 0.75kg으로 그래도 316만 8000원이나 된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심마니들도 줄고 국토가 폐허가 되면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딸리니 자연스럽게 인삼값은 그 이전에 비해 150배나 올랐다. 이 때문에 조선의 인삼상인들은 조정에 진상하는 대신 명으로 수출하였고, 때문에 자연스럽게 명 황실로 진상되는 인삼의 양이 줄어들었다.[12] 이처럼 인삼값이 오른 이유는 이 시기 명나라 의학서에 인삼의 효능이 기록되면서 그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명 황실은 요동에서 재배되는 인삼을 수입하였고 이는 누르하치의 캐시카우가 되었다.
한편 소매가격은 일본이나 중국이나 매우 높아서 각기 가격 피크시점인 겐로쿠시대와 가경연간을 기준으로 하면 무려 금가격을 넘어섰다. 겐로쿠 시대 일본의 인삼좌의 인삼 한근 가격은 금 1.5근, 은 6근의 가격이었고, 순조시기 인삼 가격방어를 실패하여 인삼 1근을 은 700냥, 즉 26.25킬로에 못팔고 은 350냥에 팔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본이나 청이나 금은교환비를 따지면 인삼은 가격 절정기시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비쌌다.
베트남의 경우, 고려인삼을 황제가 정력제와 신하들 하사품으로 애용했다고 한다.[13] 그래서인지 오래전부터 고려인삼은 가짜가 판을 쳤다. 18~19세기 청나라의 학자 옹방강이 조선의 김정희에게 보낸 편지에 "고려인삼을 잘 받았습니다. 수도(베이징)에서 고려인삼이라는 것은 가짜가 많으니 보낼 때 수십 뿌리 보내주시길"이라고 쓰여져 있을 정도.
고려인삼은 그냥 명품이 아니라 조선 자체 내에서 생산되는 물품으로는 가히 조선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물이자 조선 후기에는 조선의 재정을 버텨주던 마지막 기둥이었다. 조선이 무역을 통해 판매한 물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중국에서 사들인 백사(白絲)였다. 아직 천을 짜지 않은 비단실을 생사(生絲)라고 부르는데, 이 실의 품질에 따라 짤 수 있는 비단의 질이 달라진다. 백사(白絲)라고 부르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고급 생사는 조선과 일본에서는 생산할 수 없었고 조선은 중국산 생사와 일본의 은을 중간 거래하여 막대한 무역이익을 얻었다.
하지만 일본의 은 산출이 줄어들고 일본에서 백사의 자체 생산이 가능해지고 또 청나라와 일본의 직교역이 성사되면서 무역의 이익이 급락하여 조선은 한동안 경제 위기에 빠진다. 하여간 이 중개 무역이 조선의 핵심적인 수익원이었고 이외에는 인삼, 담배, 해산물 등이 주요 수출품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일본은 고려인삼으로 은이 상당히 유출되자 1710년 무렵 교호개혁을 추진할 때 이를 줄여보려고 에도막부가 인삼 종자 확보 및 재배에 열을 올려 결국 성공했다. 기후가 다른 탓인지 약효가 고려인삼만 못해서 얼마만큼은 계속 수입해야 했지만, 확실히 은의 유출량이 줄었다니 그만큼 중요한 작물이었던 셈(다만 은 유출 감소는 일본이 청과의 무역 직거래를 터버린 탓이 더 크다).
이어 1750년대에 들어서면 미국의 백삼이 중국에 들어오면서 다시 한 번 조선의 은 수입이 줄어들지만, 19세기에는 조선 사람들이 인삼의 보관성과 쓴맛[14]을 없앤 홍삼 가공업을 흥행시킨 것과 중국에서는 미국 백삼은 고려인삼보다 못 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다시 무역 수지가 회복된다. 이렇게 그 수출 구조의 변화만으로 조선 후기 경제를 뒤흔들었다고 할 만한 작물은 인삼이 거의 유일하다. 더 나아가 '한지'와 더불어 조선에서 산출되는 물산 중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상품이 인삼이었다 보면 된다. 게다가 인삼 재배에 성공함으로서 씨를 말리지도 않고 꾸준히 수출을 할 수 있었다. 구한말 개항 이후에도 인기가 식지 않았던 데다가 무게 대비 가격이 다른 특산물(중국 차 등)에 비해 그야말로 넘사벽이었기 때문에 조선은 관세를 짭짤하게 벌 수 있었고, 조선이 광무개혁을 펼치면서 신식 장비를 들여왔을 때 서양에 제 돈을 지불할 수 있었던 것도 인삼 덕분이었다.
이렇게 조선에서 나오는 생산품 중에 '조선 특산품'으로서 어딜 가나 가치를 인정받은 작물이었기 때문에, 중국에서 지참금으로 쓸 은이 부족하면 인삼을 가져가서 팔도록 한 역사도 오래되었다. 조공 과정에서 이루어졌다는 무역은 대개 베이징에 간 조선 사신들이 인삼을 팔고 책 등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래서인지 일제가 조선의 식민지화 직후에 담배, 소금과 함께 빠른 시기에 전매 제도를 시행한 작물 중 하나가 바로 인삼이었지만, 소금의 전매제도는 오히려 적자가 나는 지경이였고 담배나 인삼은 방대한 재정소요에 빗대었을 때 그 이익은 조족지혈인지라 쓸모가 없었다. 현대에 이르러 소금은 구하기가 쉽고[15] 생필품을 전매하기는 시대에 맞지 않으므로 폐지되었고, 담배는 기호품이라서 그대로 전매를 실시하지만, 인삼은 수익성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조선은 개항 전부터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물건이 없다시피 했다. 이것은 인삼이 상품가치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산업화된 국가들을 대상으로 대규모의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기에 인프라를 비롯한 여러가지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본래 규모의 경제의 효과를 보려면 소수만이 구매할 수 있는 사치품보다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생필품에 가까운 물건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며, 고급 와인으로 유명한 프랑스도 나폴레옹 3세 때 영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어 영국으로부터의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낮추자 국민들 사이에서 "싸고 질 좋은 공산품을 대량으로 수출하는 영국을 상대로 고작 포도주나 팔아먹으려고 한다!"라고 성토하는 일이 있었을 정도이다. 특히 섬유산업을 중심으로 한 공산품이 경제적 효과로 각광을 받던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는 대부분의 나라에서의 유명한 전통산업들이 수익경쟁력에서 아예 상대가 되지 못해 무너지는 일이 속출했으며, 전통적으로 면직물 산업이 유명했던 인도도 동인도 회사의 침탈 이후로 완전히 몰락하다시피 해버렸다. 애초에 강화도 조약을 맺을 때 조선 측 대표인 신헌이 "우린 팔 만한 물건이 없어서 무역을 개방하면 조선이 국익을 침탈당할 것이다"고 우려하였다.
한국전쟁 때는 당시 전매청[16]이 인삼의 종자를 확보하기 위해 직원들이 '특공대'를 조직해서 북한에 침투한 일도 있었다. 본래 전매청의 개성인삼전매지청에서 이 인삼 종자들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이 개성을 점령하면서 개성지청의 인원과 조직은 충남 부여로 이전했지만 인삼 종자는 미처 가져오지 못했다. 그래서 이를 확보하기 위해 전매청 직원들로 '삼종회수특공대'를 조직해서 당시 종자를 보관했던 개풍군 망포로 침투해 종자를 확보하고 모두 무사히 귀환했다. 이를 '삼종회수작전'이라고 부른다.[17]
인삼의 명성은 이미 삼국시대에 당나라에까지 널리 알려질 정도였는데, 이 당시에는 고려삼, 백제삼, 신라삼(나삼)으로 구분했다고 한다. 통일신라대에는 중국이나 일본을 오가는 사신이 나삼을 지참했고 인기가 많았다는 사실이 삼국사기[7]나 매신라물해[8] 등 문서에 기록되었다. 신라의 문인 최치원은 생일에 조국의 약재인 인삼을 상관에게 바치는 '헌생일물장(獻生日物狀)'을 썼고 계원필경에 실려있다. 한국에는 남아있는 신라 인삼이 없지만 일본 나라시의 정창원에는 정창원 신라 인삼이 현존하고 있다. 해당 문서 참조.
고려 건국 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고려인삼으로 명칭이 굳어져 현대까지 이어진다. 한반도에서 산출되는 인삼을 조선도 한국도 아니라 특별히 '고려'인삼이라고 하는 것은 고려시대부터 인삼을 인공재배하였으며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조선 왕조가 들어선 이후에도 조선을 '고려'라고 불렀던 것이 유래로, 따라서 조선 인삼도 고려 인삼이라고 불렸다. 일종의 브랜드라고 볼 수 있다.
고려인삼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재배할 수 있다.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의 모후산(母后山) 일대가 본격적인 재배인삼의 발상지이며, 이 동복삼(同福蔘)이 개성상인들에 의하여 도입되어 개성이 드디어 인삼재배의 중심지가 되었다. 정조실록에 의하면 박유철(朴有哲)이 앞장을 서서 햇빛을 가리는 재배방법을 기업적으로 실시하였다. 옛부터 이미 중국은 남획으로 야생인삼이 거의 전멸 지경에 이르렀기에 천금을 주고도 못 살 정도였다고 하며, 당시 중국과 몽골에서는 고려인삼이 바로 그 옛날 진시황제가 그토록 찾아 해맸던 불사약이라고 굳게 믿었다고 한다.[9] 일본에서도 중국-한반도를 거쳐 의학서적을 받았기에 고려인삼 하면 무조건 만병통치약(?)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며, '인삼을 먹고 병을 고쳤는데 인삼 값을 갚지 못해 목숨을 끊었다'라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이름난 작물이었다. 이 명성은 일본에 왔던 유럽인에게도 알려지는데, 한 유럽인은 집에 인삼을 보내면서 "이것은 같은 무게의 은만큼이나 값어치가 있으며 유통되는 모든 것은 전부 덴노의 소유다."라고 쓴 편지를 보냈다.
이렇기에 에도 시대에는 조선에서 인삼을 수입하기 위해 인삼대왕고은[10]이라는 순도 80% 은괴를 만들기도 했다. 당시 일본은 화폐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통용되는 화폐에서 은의 함량을 계속 줄여왔는데 당연히 일본 국내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조선이나 중국의 국제 시장에서 이걸 받아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은의 함량을 기준으로 거래를 했지만 계속 은의 함량이 떨어지자 결국 조선측에서 은을 결제용으로 받아주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원래 조선에서 일본의 저품위 은화를 받으면 그걸 다시 녹여 고품위로 제련한 뒤에 중국에 무역 결제용으로 지급했는데 이 비용이나 기타 여러 농간 등등으로 일본이 주장하는 함량보다 훨씬 낮게 인정해 준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일본이 손해를 보는지라 아예 처음부터 무역결제용으로 만든 함유량이 높은 고품위 은이 인삼대왕고은이다. 하지만 인삼대왕고은이 인삼 결제용으로만 사용된 것은 아니고 실제로는 80% 이상이 중국산 백사[11]와 각종 중국산 견직물 대금으로 결제되었고 인삼 구입 용도로 사용된 양은 20% 미만이었다. 절반 이상이 백사 대금으로 사용되는 은에 인삼대왕고은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당시 일본 내부에서도 은의 함유량을 낮춘 화폐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무역결제용으로 고품위 은을 따로 만든다는 얘기를 들으면 이들의 불만이 폭발할 우려가 있었다. 그 때문에 목숨을 살리기 위한 인삼을 구입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어야 국내의 불만을 어느 정도 누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구입할 때는 시기에 따라 가격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대략 은 한 근에 인삼 한 근 정도가 표준 가격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인삼 한 근에 쌀 16가마 정도라는 엄청난 가격이다. 참고로 현재 킬로그램당 은 가격이 약 55만원가량 하는데 인삼대왕고은은 순도가 80%이므로 210*0.8=168그램으로 계산해봐도 인삼대왕고은 120개면 현재 돈으로 약 1108만 8000원 가량 된다. 물론 당시에는 채굴 기술력 부족, 은의 국제 무역용 화폐로의 가치 등등으로 인하여 은의 값어치가 더욱 높았다. 그나마 인삼이 풍족한 편이었던(?) 조선은 은 20냥에 달했는데 이는 은 0.75kg으로 그래도 316만 8000원이나 된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심마니들도 줄고 국토가 폐허가 되면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딸리니 자연스럽게 인삼값은 그 이전에 비해 150배나 올랐다. 이 때문에 조선의 인삼상인들은 조정에 진상하는 대신 명으로 수출하였고, 때문에 자연스럽게 명 황실로 진상되는 인삼의 양이 줄어들었다.[12] 이처럼 인삼값이 오른 이유는 이 시기 명나라 의학서에 인삼의 효능이 기록되면서 그 수요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명 황실은 요동에서 재배되는 인삼을 수입하였고 이는 누르하치의 캐시카우가 되었다.
한편 소매가격은 일본이나 중국이나 매우 높아서 각기 가격 피크시점인 겐로쿠시대와 가경연간을 기준으로 하면 무려 금가격을 넘어섰다. 겐로쿠 시대 일본의 인삼좌의 인삼 한근 가격은 금 1.5근, 은 6근의 가격이었고, 순조시기 인삼 가격방어를 실패하여 인삼 1근을 은 700냥, 즉 26.25킬로에 못팔고 은 350냥에 팔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본이나 청이나 금은교환비를 따지면 인삼은 가격 절정기시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비쌌다.
베트남의 경우, 고려인삼을 황제가 정력제와 신하들 하사품으로 애용했다고 한다.[13] 그래서인지 오래전부터 고려인삼은 가짜가 판을 쳤다. 18~19세기 청나라의 학자 옹방강이 조선의 김정희에게 보낸 편지에 "고려인삼을 잘 받았습니다. 수도(베이징)에서 고려인삼이라는 것은 가짜가 많으니 보낼 때 수십 뿌리 보내주시길"이라고 쓰여져 있을 정도.
고려인삼은 그냥 명품이 아니라 조선 자체 내에서 생산되는 물품으로는 가히 조선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물이자 조선 후기에는 조선의 재정을 버텨주던 마지막 기둥이었다. 조선이 무역을 통해 판매한 물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중국에서 사들인 백사(白絲)였다. 아직 천을 짜지 않은 비단실을 생사(生絲)라고 부르는데, 이 실의 품질에 따라 짤 수 있는 비단의 질이 달라진다. 백사(白絲)라고 부르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고급 생사는 조선과 일본에서는 생산할 수 없었고 조선은 중국산 생사와 일본의 은을 중간 거래하여 막대한 무역이익을 얻었다.
하지만 일본의 은 산출이 줄어들고 일본에서 백사의 자체 생산이 가능해지고 또 청나라와 일본의 직교역이 성사되면서 무역의 이익이 급락하여 조선은 한동안 경제 위기에 빠진다. 하여간 이 중개 무역이 조선의 핵심적인 수익원이었고 이외에는 인삼, 담배, 해산물 등이 주요 수출품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일본은 고려인삼으로 은이 상당히 유출되자 1710년 무렵 교호개혁을 추진할 때 이를 줄여보려고 에도막부가 인삼 종자 확보 및 재배에 열을 올려 결국 성공했다. 기후가 다른 탓인지 약효가 고려인삼만 못해서 얼마만큼은 계속 수입해야 했지만, 확실히 은의 유출량이 줄었다니 그만큼 중요한 작물이었던 셈(다만 은 유출 감소는 일본이 청과의 무역 직거래를 터버린 탓이 더 크다).
이어 1750년대에 들어서면 미국의 백삼이 중국에 들어오면서 다시 한 번 조선의 은 수입이 줄어들지만, 19세기에는 조선 사람들이 인삼의 보관성과 쓴맛[14]을 없앤 홍삼 가공업을 흥행시킨 것과 중국에서는 미국 백삼은 고려인삼보다 못 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다시 무역 수지가 회복된다. 이렇게 그 수출 구조의 변화만으로 조선 후기 경제를 뒤흔들었다고 할 만한 작물은 인삼이 거의 유일하다. 더 나아가 '한지'와 더불어 조선에서 산출되는 물산 중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상품이 인삼이었다 보면 된다. 게다가 인삼 재배에 성공함으로서 씨를 말리지도 않고 꾸준히 수출을 할 수 있었다. 구한말 개항 이후에도 인기가 식지 않았던 데다가 무게 대비 가격이 다른 특산물(중국 차 등)에 비해 그야말로 넘사벽이었기 때문에 조선은 관세를 짭짤하게 벌 수 있었고, 조선이 광무개혁을 펼치면서 신식 장비를 들여왔을 때 서양에 제 돈을 지불할 수 있었던 것도 인삼 덕분이었다.
이렇게 조선에서 나오는 생산품 중에 '조선 특산품'으로서 어딜 가나 가치를 인정받은 작물이었기 때문에, 중국에서 지참금으로 쓸 은이 부족하면 인삼을 가져가서 팔도록 한 역사도 오래되었다. 조공 과정에서 이루어졌다는 무역은 대개 베이징에 간 조선 사신들이 인삼을 팔고 책 등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래서인지 일제가 조선의 식민지화 직후에 담배, 소금과 함께 빠른 시기에 전매 제도를 시행한 작물 중 하나가 바로 인삼이었지만, 소금의 전매제도는 오히려 적자가 나는 지경이였고 담배나 인삼은 방대한 재정소요에 빗대었을 때 그 이익은 조족지혈인지라 쓸모가 없었다. 현대에 이르러 소금은 구하기가 쉽고[15] 생필품을 전매하기는 시대에 맞지 않으므로 폐지되었고, 담배는 기호품이라서 그대로 전매를 실시하지만, 인삼은 수익성도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조선은 개항 전부터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수익을 낼 수 있는 물건이 없다시피 했다. 이것은 인삼이 상품가치가 없어서라기보다는 산업화된 국가들을 대상으로 대규모의 경제적 이익을 창출하기에 인프라를 비롯한 여러가지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이다.
본래 규모의 경제의 효과를 보려면 소수만이 구매할 수 있는 사치품보다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생필품에 가까운 물건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며, 고급 와인으로 유명한 프랑스도 나폴레옹 3세 때 영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어 영국으로부터의 수입품에 대해 관세를 낮추자 국민들 사이에서 "싸고 질 좋은 공산품을 대량으로 수출하는 영국을 상대로 고작 포도주나 팔아먹으려고 한다!"라고 성토하는 일이 있었을 정도이다. 특히 섬유산업을 중심으로 한 공산품이 경제적 효과로 각광을 받던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에는 대부분의 나라에서의 유명한 전통산업들이 수익경쟁력에서 아예 상대가 되지 못해 무너지는 일이 속출했으며, 전통적으로 면직물 산업이 유명했던 인도도 동인도 회사의 침탈 이후로 완전히 몰락하다시피 해버렸다. 애초에 강화도 조약을 맺을 때 조선 측 대표인 신헌이 "우린 팔 만한 물건이 없어서 무역을 개방하면 조선이 국익을 침탈당할 것이다"고 우려하였다.
한국전쟁 때는 당시 전매청[16]이 인삼의 종자를 확보하기 위해 직원들이 '특공대'를 조직해서 북한에 침투한 일도 있었다. 본래 전매청의 개성인삼전매지청에서 이 인삼 종자들을 보관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이 개성을 점령하면서 개성지청의 인원과 조직은 충남 부여로 이전했지만 인삼 종자는 미처 가져오지 못했다. 그래서 이를 확보하기 위해 전매청 직원들로 '삼종회수특공대'를 조직해서 당시 종자를 보관했던 개풍군 망포로 침투해 종자를 확보하고 모두 무사히 귀환했다. 이를 '삼종회수작전'이라고 부른다.[17]
고려인삼이라는 이름은 현재는 브랜드화되어 KT&G 자회사인 한국인삼공사(KGC)가 유통하고 있다.[18]
한국이 중국에 인삼을 수출한 역사는 1000년이 넘기 때문에 중화권 사람들도 한국인삼의 명성을 잘 안다. 물론 중국에서 팔리는 인삼이 양적으로는 서양삼(西洋参)이나 전칠삼(田七参)이 훨씬 많지만, 가격은 고려삼(高麗参)이 훨씬 비싸다. 고려삼은 품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열 배 이상 비싼 경우도 흔하다. 최고 품질의 고려삼은 한 근(300g)에 수백 만원을 넘는다.#
한국 인삼은 1~3등급을 천(天), 지(地), 양(良)으로 부르는데(4등급 이하는 중저품) 2011년 기준으로 최고품질인 정관장 천(15)의 경우 한 근에 중국에서 18,000위안(310만 원)정도 하고 이보다 품질이 많이 떨어지는 양(30)도 4천 위안(70만 원)정도 한다. 반면, 중국의 일반 전칠삼은 겨우 200위안에 불과. 거의 백배 차이 난다. 이러니 한국 인삼이 점유율에서 밀리는 건 너무 당연. 하지만 명품으로서의 이미지는 확실히 있고 때문에 짝퉁이 극심하다.[19]
2013년 기준으로 정관장 천급삼 최고가는 620만 원에 달한다. 1g에 2만원이 넘는 셈.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없어서 못 파는 효자상품이라는 듯.
그러나 최근엔 미국의 백삼에 밀려 한국의 인삼 세계점유율은 감소추세에 있는데 그 이유가 중국인들이 백삼이 인삼보다 더 건강에 좋다고 믿어서이다. 미국의 인삼은 무 뿌리 수준으로 크기가 어마어마한 것도 수두룩하다. 사실 미국산 인삼이 한국산과 경쟁한 역사는 이미 조선시대 때부터였다. 본래 미국산 인삼은 북아메리카에서 자생하던 것을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약초로 쓰는 정도로만 쓰였지만 중국과 교역이 시작되면서 중국 사람들이 인삼에 환장하니 캐다 팔기 시작했고, 조선에서는 이것을 큰 위협으로 봤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인삼을 재배하는 게 아니라 자연산을 캐다 파는 것이라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재배하는 인삼에 밀려 결국 사라졌다. 그 뒤에 미국에서 다시 인삼을 재배하면서 또다시 역사가 반복되었다.
한국과 중국 북부에서 나는 한국 산삼(Panax ginseng)과 미국 산삼(Panax quinquefolium)은 엄밀히 말해 다른 종이다. 감초와 비슷하게 근연종끼리 묶여 비슷하게 분류되는 것이다. 한국 인삼이 제일 효과가 좋다는 고정관념이 있으나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사포닌과 ginsenosides 함량과 비율이 서로 달라 각기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다. 다만 사포닌과 ginsenosides의 총 함량은 미국식물위원회에서 측정 결과 미국 인삼이 거의 두배정도 우월할 정도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미국삼을 약용으로 썼었으며, 애팔래치아산맥 및 와치타산맥의 기후가 한국의 인삼 최적지와 비슷하다. 게다가 미국에는 자연산 수백년근 인삼이 상대적으로 종종 발견된다. 이유는 워낙 땅이 넓고, 미국에서는 그동안 인삼을 안 먹어왔으니 수백년짜리 인삼이 많을 수밖에 없다.근데 7년정도 지나면 뿌리가 썩어 문드러진다 하지 않음?
그리고 미국에서는 산삼 채취 허가가 나는 계절이[20] 되면 자동화기로 중무장한 미국인 심마니들이 돌아다닌다. 동양에서 엄청나게 비싼 가격으로 구매해 가는 까닭에, 산삼이 많이 나는 장소는 가족 비밀로 하고 본인 소유의 토지에서 나는 산삼을 몰래 채취하려는 산삼 도둑들과 총격을 교환하면서 싸운다고. 그래서 산삼 채취 허가가 나는 계절에는 지역주민들 사이에 '산삼 열병'이 돈다고 한다... 산삼에 눈이 빨개져서 미친 인간들처럼 행동한다고.. 이쪽은 워낙 땅이 넓고 사람 수가 적다보니까 어쩌다 하나씩 산삼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산삼이 그냥 도로 옆에 산나물 자라듯 군락을 이루어 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애팔래치아 산맥에도 산삼이 많기 때문에 비슷한 양상을 볼 수 있으며다루라는 역사는 안다루는 히스토리 채널의 Appalachian Outlaws에서 볼 수 있다.
2010년 1월 11일 KBS뉴스에 의하면 인삼시장 원탑은 한국도 중국도 아닌 인삼 한 뿌리 안 나는 스위스라고 한다. 인삼의 주요성분을 표준화하여 알약으로 가공해 시장을 정복했다고. 정확히 말하면 종합비타민제에 인삼성분을 추가한 약품이다. 이름은 파X톤이라고 하는데 유럽에서는 많이 팔리는 비타민제인 모양.
그렇긴 해도 유럽권 여행 가는 이들에겐 한국 인삼 이야기를 하면 꽤 아는 노인들도 많이 보인다. 그리고 유럽권에 약국에 영양제를 둘러 보면 한국 인삼이라고 써진 것들도 많다. 즉 스위스에서도 아마도 인삼을 수입해서 거기서 성분을 추출한 뒤에 약으로 만들어 파는 모양이다. 사실 유럽 사람들은 인삼같이 쓴 것을 그대로 먹는다고 하면 인기를 못 끌게 너무나 분명하기에 알약으로 파는 것이다.[21] 그래서 유럽인들에 대한 선물로 인삼맛 캔디가 꽤 인기가 있다고.
이탈리아에선 커피의 한 종류로 완전히 자리잡아 있다. 맥카페 같은 유명 체인은 물론이고, 동네 소규모 카페 가도 메뉴판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인들이 커피도 아니라고 까는 카페 아메리카노보다도 인삼(ginseng) 커피를 메뉴판에서 찾아보기 더 쉬울 정도.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한국 인삼 효능이 유명하다고 한다. 유엔평화유지군 소속으로 주둔했던 채수문 중령은 한국하면 인삼 혹시 얻을 수 없냐는 정부 지도자들[22]에서 군벌 지도자들까지 흔하게 만났다고 한다. 아흐마드 샤 마수드도 인삼을 매우 좋아했으며 한국 인삼이라면 세계 최고 효능이라고 칭찬했을 정도라고 한다. 다만 아프가니스탄에선 워낙에 중국산 짝퉁 인삼이 넘쳐나서…
미국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지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빅 픽처의 주인공인 벤 브래드포드는 개판인 몸 상태를 추스르기 위해 한국 인삼 성분 농축약을 먹는다.
인삼으로 유명했던 개성에서는 지금도 인삼을 재배하고있다.
한국이 중국에 인삼을 수출한 역사는 1000년이 넘기 때문에 중화권 사람들도 한국인삼의 명성을 잘 안다. 물론 중국에서 팔리는 인삼이 양적으로는 서양삼(西洋参)이나 전칠삼(田七参)이 훨씬 많지만, 가격은 고려삼(高麗参)이 훨씬 비싸다. 고려삼은 품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열 배 이상 비싼 경우도 흔하다. 최고 품질의 고려삼은 한 근(300g)에 수백 만원을 넘는다.#
한국 인삼은 1~3등급을 천(天), 지(地), 양(良)으로 부르는데(4등급 이하는 중저품) 2011년 기준으로 최고품질인 정관장 천(15)의 경우 한 근에 중국에서 18,000위안(310만 원)정도 하고 이보다 품질이 많이 떨어지는 양(30)도 4천 위안(70만 원)정도 한다. 반면, 중국의 일반 전칠삼은 겨우 200위안에 불과. 거의 백배 차이 난다. 이러니 한국 인삼이 점유율에서 밀리는 건 너무 당연. 하지만 명품으로서의 이미지는 확실히 있고 때문에 짝퉁이 극심하다.[19]
2013년 기준으로 정관장 천급삼 최고가는 620만 원에 달한다. 1g에 2만원이 넘는 셈.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없어서 못 파는 효자상품이라는 듯.
그러나 최근엔 미국의 백삼에 밀려 한국의 인삼 세계점유율은 감소추세에 있는데 그 이유가 중국인들이 백삼이 인삼보다 더 건강에 좋다고 믿어서이다. 미국의 인삼은 무 뿌리 수준으로 크기가 어마어마한 것도 수두룩하다. 사실 미국산 인삼이 한국산과 경쟁한 역사는 이미 조선시대 때부터였다. 본래 미국산 인삼은 북아메리카에서 자생하던 것을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약초로 쓰는 정도로만 쓰였지만 중국과 교역이 시작되면서 중국 사람들이 인삼에 환장하니 캐다 팔기 시작했고, 조선에서는 이것을 큰 위협으로 봤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인삼을 재배하는 게 아니라 자연산을 캐다 파는 것이라 한국에서 지속적으로 재배하는 인삼에 밀려 결국 사라졌다. 그 뒤에 미국에서 다시 인삼을 재배하면서 또다시 역사가 반복되었다.
한국과 중국 북부에서 나는 한국 산삼(Panax ginseng)과 미국 산삼(Panax quinquefolium)은 엄밀히 말해 다른 종이다. 감초와 비슷하게 근연종끼리 묶여 비슷하게 분류되는 것이다. 한국 인삼이 제일 효과가 좋다는 고정관념이 있으나 최근 연구들에 따르면 사포닌과 ginsenosides 함량과 비율이 서로 달라 각기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다. 다만 사포닌과 ginsenosides의 총 함량은 미국식물위원회에서 측정 결과 미국 인삼이 거의 두배정도 우월할 정도이다. 아메리카 원주민들도 미국삼을 약용으로 썼었으며, 애팔래치아산맥 및 와치타산맥의 기후가 한국의 인삼 최적지와 비슷하다. 게다가 미국에는 자연산 수백년근 인삼이 상대적으로 종종 발견된다. 이유는 워낙 땅이 넓고, 미국에서는 그동안 인삼을 안 먹어왔으니 수백년짜리 인삼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산삼 채취 허가가 나는 계절이[20] 되면 자동화기로 중무장한 미국인 심마니들이 돌아다닌다. 동양에서 엄청나게 비싼 가격으로 구매해 가는 까닭에, 산삼이 많이 나는 장소는 가족 비밀로 하고 본인 소유의 토지에서 나는 산삼을 몰래 채취하려는 산삼 도둑들과 총격을 교환하면서 싸운다고. 그래서 산삼 채취 허가가 나는 계절에는 지역주민들 사이에 '산삼 열병'이 돈다고 한다... 산삼에 눈이 빨개져서 미친 인간들처럼 행동한다고.. 이쪽은 워낙 땅이 넓고 사람 수가 적다보니까 어쩌다 하나씩 산삼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산삼이 그냥 도로 옆에 산나물 자라듯 군락을 이루어 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애팔래치아 산맥에도 산삼이 많기 때문에 비슷한 양상을 볼 수 있으며
2010년 1월 11일 KBS뉴스에 의하면 인삼시장 원탑은 한국도 중국도 아닌 인삼 한 뿌리 안 나는 스위스라고 한다. 인삼의 주요성분을 표준화하여 알약으로 가공해 시장을 정복했다고. 정확히 말하면 종합비타민제에 인삼성분을 추가한 약품이다. 이름은 파X톤이라고 하는데 유럽에서는 많이 팔리는 비타민제인 모양.
그렇긴 해도 유럽권 여행 가는 이들에겐 한국 인삼 이야기를 하면 꽤 아는 노인들도 많이 보인다. 그리고 유럽권에 약국에 영양제를 둘러 보면 한국 인삼이라고 써진 것들도 많다. 즉 스위스에서도 아마도 인삼을 수입해서 거기서 성분을 추출한 뒤에 약으로 만들어 파는 모양이다. 사실 유럽 사람들은 인삼같이 쓴 것을 그대로 먹는다고 하면 인기를 못 끌게 너무나 분명하기에 알약으로 파는 것이다.[21] 그래서 유럽인들에 대한 선물로 인삼맛 캔디가 꽤 인기가 있다고.
이탈리아에선 커피의 한 종류로 완전히 자리잡아 있다. 맥카페 같은 유명 체인은 물론이고, 동네 소규모 카페 가도 메뉴판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인들이 커피도 아니라고 까는 카페 아메리카노보다도 인삼(ginseng) 커피를 메뉴판에서 찾아보기 더 쉬울 정도.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한국 인삼 효능이 유명하다고 한다. 유엔평화유지군 소속으로 주둔했던 채수문 중령은 한국하면 인삼 혹시 얻을 수 없냐는 정부 지도자들[22]에서 군벌 지도자들까지 흔하게 만났다고 한다. 아흐마드 샤 마수드도 인삼을 매우 좋아했으며 한국 인삼이라면 세계 최고 효능이라고 칭찬했을 정도라고 한다. 다만 아프가니스탄에선 워낙에 중국산 짝퉁 인삼이 넘쳐나서…
미국에서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지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빅 픽처의 주인공인 벤 브래드포드는 개판인 몸 상태를 추스르기 위해 한국 인삼 성분 농축약을 먹는다.
인삼으로 유명했던 개성에서는 지금도 인삼을 재배하고있다.
인삼의 한방적 효능을 종합적으로 집약한 인삼칠효설(人蔘七效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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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구탈(補氣救脫): 원기를 보하고 허탈을 구한다.(피로회복 및 체력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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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혈복맥(益血復脈): 혈액을 보충하고 맥을 회복시킨다.(빈혈,저혈압,심장쇠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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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안신(養心安神): 마음을 길러주고 정신을 안정시킨다.(노이로제,자율신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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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진지갈(生津止渴): 진액을 생기게하고 갈증을 멈추게 한다. (당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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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폐정단(補肺定喘): 폐를 보하고 천식을 머무게 한다. (폐결핵, 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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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비지사(健脾止瀉): 위장을 튼튼하게 하고 설사를 멈추게 한다. (위장염, 설사, 변비, 식욕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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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독합창(托毒合瘡): 독을 배제하고 부스럼을 없앤다.(종기, 피부병, 건조증)
이와 같이 한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효능이 찬양받아 왔다.
체질적으로 몸에 열이 많은 사람에게 쓰는 것은 금물로 여겨지는데, 임상적으로 소양인들이 부작용이 나는 현상을 많이 목격한다. 피부가 건조해지거나 눈이 붉어지고, 인후부가 건조해지는데, 특히 감기가 걸려을때 다른 약제와 조합을해서 먹어야지 단독으로 먹었을 경우 기침이 심해지고 인후통이 심해지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수삼을 먹으면 쓸데없이 열이 오르는 부작용이 있는 경우가 있으며[23] 인삼과 인삼을 달인 홍삼은 사람에 따라 열이 나고 심박이 빨라지며 혈압이 높아져, 사실상 흥분제를 먹은 듯한 상태가 지속되는 부작용을 겪는 사람들이 많은데, 덕분에 밤에 긴장감 때문에 잠을 뒤척이는 경우가 많다. 한의사 사이에서 견해에 따라 과민반응이라 하는 사람도 있고 부작용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주는 SSRI 계열이나 NDRI계열의 향정신성 약물을 먹고 있다면 둘의 합작으로 필요 이상으로 흥분될 수 있으니 같이 먹는 건 자제하자. 인삼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는 불안, 흥분, 불면 등이 있는데 이들은 10g을 3개월 간 먹었을 때 나타나며 복용을 중단하면 증상이 사라진다. 어떤 약물이든 과다복용하는 것이 문제다.
뿌리와 줄기가 연결되는 끄트머리를 뇌두라 하는데, 수삼의 경우 이것을 제거하지 않으면 구토가 유발되므로 주의하자. 영양학과 한스 셀리에(Hans Selye)의 스트레스 단계설을 연계하여 보는 쪽에서는 특정 단계에서는 인삼이나 부자류를 쓰면 오히려 부신을 불필요하게 자극해서 더 지치게 만들기 때문에 숙지황이나 석고류를 사용하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감기 등 몸에서 발열이 일어나는 질병에 걸렸을 때는 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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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의 효능에 대한 꽤나 많은 연구들이 있지만, 수준이 높은 연구는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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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이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확실한 증거는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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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량을 복용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안전하지만, 장기적인 복용도 안전한지는 아직 의문이다. 또한 일부 전문가들은 영유아, 어린이, 산모, 수유중인 여성은 복용하지 않는 것을 권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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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복용시) 두통, 불면증, 소화불량의 부작용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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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이 혈압이나 혈당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증거들이 있다. 따라서 당뇨병이나 고혈압 환자는 복용 전 전문가와 상담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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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다른 약과 같이 복용시의 위험성은 낮다고 믿어지지만, 항응고제들을 포함한 일부 약품에 대해서는 부작용의 가능성이 있다.
예비 연구들에서는 피로 해소, 갱년기 완화, 기억력 향상 등에 효과가 있을 가능성이 나타나긴 했다. 하지만 2005년에서 2014년 사이에 이뤄진 44개 연구에 대한 체계적 문헌고찰# 결과, 긍정적인 결과를 낸 29개 연구들은 근거가 약하고 나머지 15개 연구들에선 효과가 없었다. 즉, 플라시보 효과와 별다른 차이를 내는데 실패했다는 것. 물론 아직 연구 초기 단계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인삼 속 사포닌, 이른바 진세노사이드라는 스테로이드 배당체의 효과는 아직 세포배양이나 동물실험 단계이기 때문에, 인체에 대한 효능을 말할 단계는 아니다. 그래도 굳이 언급해보자면, 일부 항증식성 효과나 설치류에 대한 실험에서 심혈관계, 중추신경계, 면역체계에 대한 효과 및 항암효과, 항산화 효과, 몇몇 퇴행성 질환에 대한 효과 등이 보고되었다.[25] 정확히 어떤 원리인지는 아직 불명이지만, 스테로이드 호르몬과의 유사함을 기반으로 세포막에 작용해서 변화시키거나 스테로이드 호르몬 수용체와 작용하는 등의 메커니즘이 제기되고 있다. 물론 그런 메커니즘과 보고된 효과들 사이의 상관관계는 아직 불명이다.
진세노사이드가 프레보텔라 오리스에 의해 컴파운드 K라는 물질로 변환되는데, 식약처 연구에 의하면 한국인의 25%는 진세노사이드를 컴파운드k로 분해하는 미생물이 없어 인삼을 먹어도 큰 효능을 보지 못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장내에 진세노사이드를 분해하는 미생물이 없는 사람도 컴파운드k를 바로 섭취하면 보다 좋은 효능을 느낄 수 있으며 이는 분해 미생물이 있는 사람도 해당한다. 진세노사이드의 경우 인삼의 품질 균일화를 위해 RG1+ RB1+RG3의 총합을 기재하도록 되어 있지만 컴파운드K는 의무가 아니다
인삼과 홍삼에는 에스트로겐 유사작용이 있다. 이 때문에 자궁근종 등 에스트로겐 과다에 의한 여성질환 환자에게 주의가 요구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식약청에서 6가지 효능인 면역증진, 피로 해소, 혈액순환 개선, 갱년기 완화, 기억력 향상, 항산화에 효과가 있을 가능성을 인정하여 건강기능식품 2등급을 부여했지만, 2등급은 해당 효과가 있다는 연구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과학적 합의를 이끌어내기에 부족한 수준일 때 주는 등급으로, 말그대로 가능성만 인정한 것이지 효과가 있다고 인정한게 아니다. 따라서 2017년까지도 아직 확실하게 과학적으로 증명된 효과는 없다고 보면 된다.[26][27]
서울대 약학과 연구팀이 진세노사이드(사포닌) 중 디올계에 해당되는 진세노사이드 Rg3가 암세포 뿐만이 아니라 일반 세포도 파괴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관련 기사 인삼은 기존에도 심혈관 질환을 일으키는 사례가 보고된 바 있었는데 이를 입증한 연구 결과이다.
효능과는 무관하게 그저 맛있다거나 냄새가 좋아서 인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특유의 쌉쌀한 맛과 향이 꿀의 단맛과 어우러진 인삼청 같은 걸 장복하거나, 인삼 사탕이라든지 껌, 비누 같은 걸 즐겨 쓰는 등. 하지만 젊은 사람이 그러면 할아버지 취향으로 여겨진다. 기호품으로 쓰기에 인삼이 너무 비싸다는 것도 있고….
효능이 좋다고는 하지만, 한국인이라고 인삼에 내성이 있는건 아니라서, 알레르기가 발생한다. 삼에 닿으면 붓는걸로 끝나 먹긴 할수 있는 사람이 있거나, 반응이 심히 나타나서 아예 못먹는 사람도 존재 한다.
일본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에서는 등장인물 쿠샤미 선생이 '조선 인삼이 좋다던데 하나 사먹고 정신병이나 고쳐라' 라고 편지로 조롱당하는 장면이 있다.
한때 중국에서 한국인삼이 고혈압을 유발한다는 근거없는 소문이 돌아서 인기가 떨어진 적도 있는데, 사스가 유행할 때 한국인은 인삼과 김치 때문에 사스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 돌아 다시 인기를 회복했다. 때문에, 중국인에게 한국인삼을 선물하면 매우 좋아한다. 특히 광동성 같은 남쪽 지방 사람보다 하북성 같은 북쪽 지방 사람에게 선물하면 100% 기뻐한다.
1914년 개성시에서 처음 보고된 인삼 균핵병의 기주이다. 이 병에 걸린 인삼은 뿌리 속이 하얗게 썩는 백침현상을 보인다. 병든 부위 표면에 흰 솜털같이 생긴 균사가 일고, 이것이 점차 뭉쳐 균핵을 형성한다. 뿌리 내부는 완전히 썩어서 사라져 외피만을 남기게 된다.
태조 왕건에서 견훤의 아버지인 아자개가 앓아눕자 견훤이 500년 묵은 산삼을 보냈는데, 왕건이 1000년 묵은 산삼을 보내서 아자개가 왕건 편으로 돌아서버리는 콩가루 집안이 연출되어 버린다…. 이 산삼 먹고 난 뒤부터 아자개는 기운이 확 살아난다. 그리고 극중에서 굉장히 오래 산다. 1000년근 산삼이 아니라 100년근 산삼이라도 버릴 것은 없건만… 당연히 산삼 약효에 대한 판타지를 이용해 만들어낸 에피소드.
실존했던 조선시대 상인 임상옥의 일대기를 다룬 최인호의 소설 상도와 MBC 드라마 상도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조선시대 청과의 교역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볼 수 있던 물품은 단연 인삼이었고, 이 인삼 무역을 통해 거상으로 성공하는 임상옥의 인생을 다룬 작품이다. 청나라 상인들의 담합에 맞서 홍삼 상자를 불태우며 버틴 끝에 막대한 이득을 남기며 팔아치운 장면이 압권.
미국 드라마 엑스파일 4기 1화에서 국제연합 사무총장 여비서가 멀더에게 캐나다 농장의 식물이 인삼이라고 밝힌다.
일본의 게임 회사 코에이에서 만든 게임 징기스칸 4에서는 고려의 문화 아이템으로 나오는데 왕비의 임신 확률을 올려 준다. 삼국지 9 PS2, 삼국지 13에서는 고려인삼이 귀중품 아이템으로 나온다. 동시기(서기 2~3세기 경)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고려가 나와서 고증오류 아닌지 의문을 표할 수 있는데, 이는 한국과 일본의 한자 표기 차이에서 온 오해로, 현대 일본어에서 '인삼'이라고 한자로 쓰게 되면 이것은 인삼이 아닌 "당근"이라는 뜻이며, 한자로 고려인삼, 혹은 조선인삼이라고 표기해야 우리가 아는 그 '인삼'이 된다.[28] 그냥 '인삼'이라고 번역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울티마 시리즈에는 마법에 사용되는 시약 아이템 중 하나로 등장한다. 울티마 시리즈의 마법은 총 여덟 가지의 시약이 필요한데 그 중 하나가 인삼(Ginseng)이다. 주로 회복이나 버프 계열 마법에 시약으로 들어가고, HP를 채워주는 회복 물약의 재료도 인삼이 들어간다.
김장훈의 정규 3집 <노래만 불렀지>의 3은 사실 인삼이다. 앨범 재킷의 도장무늬를 잘 보면 인삼과 집이 그려져 있다.
효능이 좋다고는 하지만, 한국인이라고 인삼에 내성이 있는건 아니라서, 알레르기가 발생한다. 삼에 닿으면 붓는걸로 끝나 먹긴 할수 있는 사람이 있거나, 반응이 심히 나타나서 아예 못먹는 사람도 존재 한다.
일본 소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에서는 등장인물 쿠샤미 선생이 '조선 인삼이 좋다던데 하나 사먹고 정신병이나 고쳐라' 라고 편지로 조롱당하는 장면이 있다.
한때 중국에서 한국인삼이 고혈압을 유발한다는 근거없는 소문이 돌아서 인기가 떨어진 적도 있는데, 사스가 유행할 때 한국인은 인삼과 김치 때문에 사스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 돌아 다시 인기를 회복했다. 때문에, 중국인에게 한국인삼을 선물하면 매우 좋아한다. 특히 광동성 같은 남쪽 지방 사람보다 하북성 같은 북쪽 지방 사람에게 선물하면 100% 기뻐한다.
1914년 개성시에서 처음 보고된 인삼 균핵병의 기주이다. 이 병에 걸린 인삼은 뿌리 속이 하얗게 썩는 백침현상을 보인다. 병든 부위 표면에 흰 솜털같이 생긴 균사가 일고, 이것이 점차 뭉쳐 균핵을 형성한다. 뿌리 내부는 완전히 썩어서 사라져 외피만을 남기게 된다.
태조 왕건에서 견훤의 아버지인 아자개가 앓아눕자 견훤이 500년 묵은 산삼을 보냈는데, 왕건이 1000년 묵은 산삼을 보내서 아자개가 왕건 편으로 돌아서버리는 콩가루 집안이 연출되어 버린다…. 이 산삼 먹고 난 뒤부터 아자개는 기운이 확 살아난다. 그리고 극중에서 굉장히 오래 산다. 1000년근 산삼이 아니라 100년근 산삼이라도 버릴 것은 없건만… 당연히 산삼 약효에 대한 판타지를 이용해 만들어낸 에피소드.
실존했던 조선시대 상인 임상옥의 일대기를 다룬 최인호의 소설 상도와 MBC 드라마 상도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조선시대 청과의 교역에서 가장 큰 이득을 볼 수 있던 물품은 단연 인삼이었고, 이 인삼 무역을 통해 거상으로 성공하는 임상옥의 인생을 다룬 작품이다. 청나라 상인들의 담합에 맞서 홍삼 상자를 불태우며 버틴 끝에 막대한 이득을 남기며 팔아치운 장면이 압권.
미국 드라마 엑스파일 4기 1화에서 국제연합 사무총장 여비서가 멀더에게 캐나다 농장의 식물이 인삼이라고 밝힌다.
일본의 게임 회사 코에이에서 만든 게임 징기스칸 4에서는 고려의 문화 아이템으로 나오는데 왕비의 임신 확률을 올려 준다. 삼국지 9 PS2, 삼국지 13에서는 고려인삼이 귀중품 아이템으로 나온다. 동시기(서기 2~3세기 경)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고려가 나와서 고증오류 아닌지 의문을 표할 수 있는데, 이는 한국과 일본의 한자 표기 차이에서 온 오해로, 현대 일본어에서 '인삼'이라고 한자로 쓰게 되면 이것은 인삼이 아닌 "당근"이라는 뜻이며, 한자로 고려인삼, 혹은 조선인삼이라고 표기해야 우리가 아는 그 '인삼'이 된다.[28] 그냥 '인삼'이라고 번역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울티마 시리즈에는 마법에 사용되는 시약 아이템 중 하나로 등장한다. 울티마 시리즈의 마법은 총 여덟 가지의 시약이 필요한데 그 중 하나가 인삼(Ginseng)이다. 주로 회복이나 버프 계열 마법에 시약으로 들어가고, HP를 채워주는 회복 물약의 재료도 인삼이 들어간다.
김장훈의 정규 3집 <노래만 불렀지>의 3은 사실 인삼이다. 앨범 재킷의 도장무늬를 잘 보면 인삼과 집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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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육환경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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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배삼: 밭에서 재배하여 기른 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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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뇌삼 (長腦蔘): 산삼 씨를 자연삼림속에 뿌려서 기른 인삼, 산양삼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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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삼: 야생 인삼. 옛부터 죽은사람도 살리는 약이라고 할 정도로 뛰어나다. 먹으면 호랑이 기운이 샘솟는다는 소재로도 유명. 참고로 굵고 큰건 짝퉁이다. 진짜 산삼은 혹독한 자연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홀쭉하고 잔뿌리가 길고 가늘다. 지금은 산삼의 씨가 발아하여 난 진짜 산삼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요즘 일반인이 산삼을 캤다는 뉴스가 자주 들어오는데 이런 산삼은 인삼 재배지에서 새가 재배종 인삼열매를 먹고 산 속 어딘가에 똥을 누었는데 마침 그 곳이 인삼이 자라기에 좋은 땅이라 거기서 싹이 난 것이거나
그냥 산삼이라 해 주자산양삼(야생에다가 씨뿌려서 난 인삼)을 발견한것일 확률이 크다. 진짜 산삼은 17세기 말엽부터 거의 씨가 말랐다고 한다. 사족으로, 호랑이의 감소, 소빙하기와도 연관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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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방법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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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식삼: 종자를 뿌려서 재배한 1년근 묘삼(모종)을 채취한 후 밭을 옮겨서 심어 재배한 인삼. 경기도, 강원도에서 주로 재배되며 홍삼 원료용 6년근이 주로 재배된다. 직파삼에 비해 뿌리가 사방으로 뻗은 난발삼이 주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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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방법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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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삼: 캐낸 직후 가공하지 않은 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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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삼: 4~6년근 수삼을 원료로 표피를 제거하여 건조한 인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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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삼: 4~6년근 수삼을 증기로 쪄서 만든 적갈색 인삼. 최근 흑홍삼이라는 이름으로 판매되는 제품은 증기로 찌는 가공단계를 3번 이상으로 늘린 제품이다. 9번 쪄서 말린 '구증구포'삼은 정말 새카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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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삼: 80~90도 정도의 물에 잠깐 데쳐서 말린 인삼, 홍삼이 전매로 묶여 있던 때에 홍삼의 제조법을 피해서 만들어진 가공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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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삼: 표피 제거 후에 물에 살짝 데치고 실로 묶어 굽힌채로 말린 인삼. 시중에는 거의 유통되지 않으나 한약방에서 많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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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상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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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산업법상 "인삼류": 아래 것들 모두를 말하는데(인삼산업법 제2조 제7호), 결국 가공방법에 따른 분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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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삼(水蔘): 말리지 아니한 인삼 (같은 조 제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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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삼(紅蔘): 수삼을 증기나 그 밖의 방법으로 쪄서 익혀 말린 것으로서 담적갈색·담황갈색·다갈색 또는 농다갈색을 띠는 것 (같은 조 제3호, 같은 법 시행규칙 제1조의2 제1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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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삼(太極蔘): 수삼을 물로 익히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익혀서 말린 것으로서 담황색·백황색 또는 담갈색을 띠는 것 (같은 법 제2조 제4호, 같은 법 시행규칙 제1조의2 제2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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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삼(白蔘): 수삼을 햇볕·열풍 또는 그 밖의 방법으로 익히지 아니하고 말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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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의 인삼 (같은 법 제2조 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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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삼: 수삼을 증기나 그 밖의 방법으로 쪄서 익혀 말린 것으로서 담흑갈색 또는 흑다갈색을 띠는 것 (같은 법 시행규칙 제1조의3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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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삼 - 특별관리임산물에 해당한다(임업 및 산촌 진흥촉진에 관한 법률 제2조 제3호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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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삼은 연작이 불가능하고 한번 심은 땅에 10년간은 다시 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관계로[30] 인삼을 심을 새 땅이 많고 일교차가 커서 기후가 인삼의 품질과 생육환경에 유리한 강원도 영서지방, 경기도에서 대부분의 6년근이 재배된다. 중앙회는 농협과 통합되어 있으나 지역 농협은 일반 농협과 따로 운영한다. 농협과 통합되면서 농협에서 자체 브랜드 '한삼인'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