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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면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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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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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수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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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한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뜯어서 끓는 국물에 넣고 익혀낸 요리. 반죽의 모양을 제외한다면 칼국수와 매우 흡사한 요리다.[1] 실제로 국수 반죽을 직접 미는 칼국수를 파는 집에서는 높은 확률로 수제비도 같이 팔며, 둘을 합친 칼제비란 메뉴도 있다. 다만 수제비는 사실 국수보다는 파스타[2]에 가깝다.
평안도&함경도&황해도에서는 '뜨더국/뜨덕국'으로 불린다고 한다. 요리할 때 반죽을 손으로 뚝뚝 뜯어낸다는 점 때문인 듯. 이 외에도 던지기탕이라는 별칭도 있다. 한자어로는 박탁(餺飥 - 수제비 박, 수제비 탁)이라고 한다. 어원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손(手)으로 접었다(摺)고 해서 슈져비→수제비가 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평안도&함경도&황해도에서는 '뜨더국/뜨덕국'으로 불린다고 한다. 요리할 때 반죽을 손으로 뚝뚝 뜯어낸다는 점 때문인 듯. 이 외에도 던지기탕이라는 별칭도 있다. 한자어로는 박탁(餺飥 - 수제비 박, 수제비 탁)이라고 한다. 어원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손(手)으로 접었다(摺)고 해서 슈져비→수제비가 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지금은 대표적인 서민 음식으로 불리지만, 사실 조선 시대까지만 해도 밀가루[3]가 귀했기 때문에 수제비[4] 역시 귀한 음식이어서 양반들의 접대 요리로 쓰일 정도로 고급 요리였다. 다만 이때도 밀가루를 이용하지만 않았을 뿐 대체품으로 메밀가루 등을 이용해서 서민들도 수제비를 만들어먹기는 했다. 사실 곡물 가루를 이용한 요리 중 가장 간단한 축에 속하니 굳이 밀 아니더라도 대체품이 있긴 하다. 제주도엔 지금도 메밀 가루를 이용한 '조게비(수제비의 제주도 사투리)'라 불리는 전통 요리가 남아있다.
밀가루 수제비가 서민 음식이 된 것은 미국의 밀가루 러쉬가 시작된 미군정과 한국 전쟁 즈음부터였다.[5] 이 당시 미국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탓에 전투식량 수요가 줄었고, 특히 유럽 일대와는 달리 미국은 본토가 공격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국 농업 생산 기반과 생산량이 매우 건실했다. 또한 유럽 일대의 전후 복구가 진행되면서 유럽의 농산물 생산량이 점점 늘어나 세계의 농산물의 가격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때 미국은 자국의 대외 이미지를 매우 좋게 하기 위함과 동시에 미국내 잉여 농산물로 인해 자국 농민들이 손해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해 농산물들을 해외의 후진국들에게 열심히 원조 물자로 보내기 시작했는데, 이때 한국에 본격적으로 원조 물자 밀가루가 대량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6]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수입 밀가루가 국내에 흔해졌는데, 이후 부족한 쌀 생산 문제와 겹쳐 정부 차원의 밀가루 혼분식 장려 운동이 시작되었고, 덕분에 수제비도 점점 서민 음식이 되어갔다.
다만 이 당시 빈민층 가정에서 먹던 수제비는 부재료를 풍부하게 넣지 않고 보통 물에다 고추장이나 된장, 소금 등으로 간만 해서 채소 조금 넣고 끓여냈다고 한다. 게다가 아직 대가족 시대였고, 분가해 산다 해도 평균 자녀수가 5명을 넘었기 때문에 수십 명이 넘는 많은 식구가 먹을 양을 한꺼번에 끓이다 보면, 요즘 수제비처럼 쫄깃한 게 아니라 퉁퉁 불어 퍼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지금도 노인들 중에서 일부는 수제비를 추억으로 즐겨먹는 반면, 일부는 반대로 가난한 시절이 떠오르고 맛없는 음식이란 생각에 지겹다고 잘 안 먹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일본도 비슷한 사정 때문인지 전후 시기 수제비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지금은 기타칸토 지역[7] 정도에서만 일상 식사로 남아있으며, 그 외의 현에서는 전후 시대의 추억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편이라고. 일본 만화 맛의 달인 에피소드 중에서는 "요즘 수제비는 옛날 수제비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나이 든 사람이 나오는데, 그 당시처럼 만든 수제비를 먹고 나서 "그 맛이긴 하지만 그때처럼 맛있게 먹진 못하겠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요즘 수제비는 옛날 수제비의 깊은 맛을 따라가지 못한다!" 같은 부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전후시대 자신이 먹던 것과 같은 수제비를 젊은 사람들(지로와 유우코)이 제대로 먹기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당시에는 워낙 배가 고프니 그런 것도 맛있게 먹었지만) "지금은 나도 그때처럼 맛있게 먹지는 못하는데 하물며 젊은 사람들 입맛에는 오죽하겠느냐, 또 전쟁을 하면 이런 음식이나 먹어야 하는 신세가 되니 전쟁을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맛의 달인 특유의 반전 에피소드이다. 그리고 "요즘 수제비는 수제비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내용의 경우, 이 사연이 기사화되면서 수제비가 가난뱅이 대용식처럼 알려지게 되자 화가 난 수제비 전문 요리사를 위해 제대로 된 요리인 현대의 수제비도 소개하는 과정에서 "(내가 아는) 수제비는 재료도 제대로 넣지 못하고 대강 만든 맛 없는 요리인데, 이 요리는 제대로 된 맛있는 요리이니 수제비일 리 없다"고 반론하는 일종의 개그씬.
1990년대 들어선 일명 '항아리 수제비' 등이 한동안 인기를 끌기도 했고, 21세기 이후 퓨전 요리가 인기를 끌면서 일반적인 국물에 끓여먹는 수제비가 아닌 서양식 소스와 퓨전한 뇨키풍으로 만든 수제비를 선보이는 곳도 생겨났다. 중화요리와 퓨전한 짬뽕 수제비는 중국집에서 이젠 흔히 볼 수 있는 메뉴고, 짜장 수제비도 존재한다. 해산물 추가는 기본. 결과적으로 이런 여러 바리에이션들 속에서 수제비는 지금도 대표적인 밀가루 음식 중 하나로 사랑받고 있다.
어쨌든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수제비가 서민들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 탓에, 지금도 집안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을 때 이걸 대접하면 엄청 가엾게 보인다고 한다. 사실 밖에서 식사로 대접하기 위해 수제비 전문집에서 먹거나, 집에서 손님과 먹더라도 매운탕을 먹고 난 이후에 부차적으로 먹는 거면 몰라도, 집에서 손님에게 수제비만을 대접하는 일은 거의 없다. 손님과 집주인이 아주 친해서 귀찮게 상차림을 하지 않고 가볍게 한 끼 때우기 위해서 만들지 않는 이상, 별로 고급스런 대접은 아닌 셈이다. 사실상 외국의 수프에 대한 인식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밀가루 수제비가 서민 음식이 된 것은 미국의 밀가루 러쉬가 시작된 미군정과 한국 전쟁 즈음부터였다.[5] 이 당시 미국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탓에 전투식량 수요가 줄었고, 특히 유럽 일대와는 달리 미국은 본토가 공격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국 농업 생산 기반과 생산량이 매우 건실했다. 또한 유럽 일대의 전후 복구가 진행되면서 유럽의 농산물 생산량이 점점 늘어나 세계의 농산물의 가격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때 미국은 자국의 대외 이미지를 매우 좋게 하기 위함과 동시에 미국내 잉여 농산물로 인해 자국 농민들이 손해를 보는 것을 막기 위해 농산물들을 해외의 후진국들에게 열심히 원조 물자로 보내기 시작했는데, 이때 한국에 본격적으로 원조 물자 밀가루가 대량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6]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수입 밀가루가 국내에 흔해졌는데, 이후 부족한 쌀 생산 문제와 겹쳐 정부 차원의 밀가루 혼분식 장려 운동이 시작되었고, 덕분에 수제비도 점점 서민 음식이 되어갔다.
다만 이 당시 빈민층 가정에서 먹던 수제비는 부재료를 풍부하게 넣지 않고 보통 물에다 고추장이나 된장, 소금 등으로 간만 해서 채소 조금 넣고 끓여냈다고 한다. 게다가 아직 대가족 시대였고, 분가해 산다 해도 평균 자녀수가 5명을 넘었기 때문에 수십 명이 넘는 많은 식구가 먹을 양을 한꺼번에 끓이다 보면, 요즘 수제비처럼 쫄깃한 게 아니라 퉁퉁 불어 퍼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지금도 노인들 중에서 일부는 수제비를 추억으로 즐겨먹는 반면, 일부는 반대로 가난한 시절이 떠오르고 맛없는 음식이란 생각에 지겹다고 잘 안 먹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일본도 비슷한 사정 때문인지 전후 시기 수제비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지금은 기타칸토 지역[7] 정도에서만 일상 식사로 남아있으며, 그 외의 현에서는 전후 시대의 추억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편이라고. 일본 만화 맛의 달인 에피소드 중에서는 "요즘 수제비는 옛날 수제비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나이 든 사람이 나오는데, 그 당시처럼 만든 수제비를 먹고 나서 "그 맛이긴 하지만 그때처럼 맛있게 먹진 못하겠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요즘 수제비는 옛날 수제비의 깊은 맛을 따라가지 못한다!" 같은 부심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전후시대 자신이 먹던 것과 같은 수제비를 젊은 사람들(지로와 유우코)이 제대로 먹기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당시에는 워낙 배가 고프니 그런 것도 맛있게 먹었지만) "지금은 나도 그때처럼 맛있게 먹지는 못하는데 하물며 젊은 사람들 입맛에는 오죽하겠느냐, 또 전쟁을 하면 이런 음식이나 먹어야 하는 신세가 되니 전쟁을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맛의 달인 특유의 반전 에피소드이다. 그리고 "요즘 수제비는 수제비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내용의 경우, 이 사연이 기사화되면서 수제비가 가난뱅이 대용식처럼 알려지게 되자 화가 난 수제비 전문 요리사를 위해 제대로 된 요리인 현대의 수제비도 소개하는 과정에서 "(내가 아는) 수제비는 재료도 제대로 넣지 못하고 대강 만든 맛 없는 요리인데, 이 요리는 제대로 된 맛있는 요리이니 수제비일 리 없다"고 반론하는 일종의 개그씬.
1990년대 들어선 일명 '항아리 수제비' 등이 한동안 인기를 끌기도 했고, 21세기 이후 퓨전 요리가 인기를 끌면서 일반적인 국물에 끓여먹는 수제비가 아닌 서양식 소스와 퓨전한 뇨키풍으로 만든 수제비를 선보이는 곳도 생겨났다. 중화요리와 퓨전한 짬뽕 수제비는 중국집에서 이젠 흔히 볼 수 있는 메뉴고, 짜장 수제비도 존재한다. 해산물 추가는 기본. 결과적으로 이런 여러 바리에이션들 속에서 수제비는 지금도 대표적인 밀가루 음식 중 하나로 사랑받고 있다.
어쨌든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수제비가 서민들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 탓에, 지금도 집안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을 때 이걸 대접하면 엄청 가엾게 보인다고 한다. 사실 밖에서 식사로 대접하기 위해 수제비 전문집에서 먹거나, 집에서 손님과 먹더라도 매운탕을 먹고 난 이후에 부차적으로 먹는 거면 몰라도, 집에서 손님에게 수제비만을 대접하는 일은 거의 없다. 손님과 집주인이 아주 친해서 귀찮게 상차림을 하지 않고 가볍게 한 끼 때우기 위해서 만들지 않는 이상, 별로 고급스런 대접은 아닌 셈이다. 사실상 외국의 수프에 대한 인식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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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로 반죽을 만들고, 냉장고에 30분~1시간 가량 넣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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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이면서 밀가루 반죽을 뚝뚝 뜯어 넣는다. 팁이 하나 있다면, 얇게 펴서 뜯어 넣는 게 나중에 먹을 때 식감이 더 좋다. 조미료을 넣을 거라면 이때 넣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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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채가 다 익을 때 정도면 완성.
백종원의 말에 따르면 수제비는 너무 성의 있게 만들면 오히려 맛이 없는데, 반죽을 대충대충 찢어서 모양이 각각 제멋대로 되게 만들어야 맛도 좋고 식감도 재밌다고 한다. 장사가 잘 안 되는 식당에서는 시간이 남아서 수제비를 천천히 균일하게 만들다 보니 더 맛이 없으며, 손님이 많은 식당에서는 바쁘다 보니 빠르게 뜯어서 만드는데 오히려 그게 수제비 맛의 비법이라고. 수제비 잘하는 집은 반죽 뜯을 때 뜨거운 육수에 살짝 담갔다 꺼내면서 뜯어서 쫄깃함을 유지한다.
'국수 잘 만드는 사람이 수제비도 못할까'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간단하지만, 야매요리 버전은 더 처절하게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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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수 대신 계란국을 끓이고, 여기에 수제비를 뜯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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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스프를 물에 풀어 끓이고, 수제비를 뜯어 넣는다.
여기서 수제비의 질감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는 반죽을 쫄깃하게 하는 것인데, 반죽을 오랫동안 치댄 뒤 냉장고에 1시간 정도 넣어두면 이 쫄깃함이 아주 잘 살아난다. 백종원이 소개하는 집에서 수제비 반죽을 하는 요령 핵심은 쫄깃함을 위해서는 수타로 많이 치대야 하는데,[8] 가정집에서는 힘드니까 발로 밟는 족타라도 꼭 해야 된다는 것이다. 많이 한 만큼 쫄깃함이 살아난다.
일반적으로는 반죽에 밀가루나 쌀가루 말고는 딱히 들어가는 재료가 없다 보니 수제비의 맛은 국물이 좌우한다.
초보자들은 수제비를 끓일 때 반죽에서 전분이 흘러나와 반죽은 흐물흐물해지고 국물은 걸쭉해져서 망칠 수 있다. 반죽을 치댈 때 식초나 레몬즙 또는 감자즙[9] 혹은 전분이나 계란 물을 섞어주면 끓여도 반죽이 퍼지지 않고 쫄깃쫄깃하다. 양 조절을 잘못하면 맛이 엇나가는 식초/레몬즙보다는 감자를 갈아넣거나 계란을 넣는 게 무난할 것이다.
그리고 KBS2 스펀지의 코너인 초간단 스펀지에 따르면 라면으로도 수제비를 만들 수가 있다고 한다. 만드는 방법은 라면을 잘게 빻아 가루로 만든 다음 국물은 라면 스프를 이용해서 끓이면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
모양이 투박하지만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어서 자취 생활 중에서도 해먹기 좋다. 그래서인지 요리 아마추어가 면을 직접 뽑아 먹으려고 시도했다가 망하면 수제비로 급선회하는 모습을 꽤나 자주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무한도전 식객 특집의 유재석.
라면과 함께 끓이면 라제비라는 요리가 된다. 옛날 분식집에선 자주 보이던 메뉴였으나 요즘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강남역 인근에는 아직 라제비로 유명한 분식집이 존재한다. 사실 라제비나 (라면과 소면을 함께 끓이는) 라국수 등의 요리는 한국에서 인스턴트 라면이 그리 값싸지 않은 음식이던 시절, 라면보다 싼 국수나 밀가루 수제비를 넣어 양을 불려 배를 채우기 위해 많이 먹었던 음식이므로 오히려 라면이 저렴한 먹거리의 대명사가 된 이후에는 많이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10] 무엇보다도 라면(유탕면)과 수제비, 또는 건면은 면이 익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르고[11] 또 하나 분량의 라면 스프에 면을 더 넣어 양을 불리면 맛이 싱겁고 밍밍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12]
결국 분식집 등에서 맛있게 먹을 만한 음식으로 내놓는 라제비나 라국수는 라면과 수제비를 따로 넣어 익히는 시간을 조절하고, 라면 하나 분량의 스프로는 모자란 맛을 벌크로 추가 구매한 스프를 더 사용한다거나 가능하면 따로 육수와 양념, 고명 등을 사용하여 보충하는 등 그 식당의 특별한 메뉴를 만들기 위해 나름의 수고를 들여 복잡한 조리 과정을 거친 것이다. 하나 일반 가정에서 간편식으로 라면을 끓이면서 저렇게 귀찮은 일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므로, 당연히 영 맛 없는 음식이 된다. 쌀값과 라면값이 싸진 이상 국물에 밥을 말아먹거나 처음부터 라면을 2개 끓여먹는 쪽이 훨씬 간단하고 맛있는 것.
지역에 따라 국물이나 반죽 모양이 특이한 요리가 있다. 해안 지방에서는 조개나 북어 등으로 국물을 우리거나, 아예 미역국 같은 국물에 반죽을 올갱이 모양으로 만들어서 넣기도 한다. 내륙에서는 김치나 고춧가루를 푼 새빨갛고 매콤한 국물도 있고, 된장국에 반죽을 넣기도 하며, 아예 반죽 자체를 생략하고 걸쭉하게 푼 밀가루를 국자로 떠서 꿇는 국물에 부어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쫄깃한 수제비가 아니라 흐늘흐늘한 아주 연한 수제비가 된다.
밀가루를 반죽하고 일일이 뜯는 것이 귀찮다면 만두피를 이용해도 좋다. 얇고 야들야들한 식감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쪽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냥 시중에 있는 만두피를 2등분해서 분리해 넣으면 끝. 수제비라기 보다는 넓은 파스타면 같은 느낌이 난다.
중국 요리 중에도 있는데 거다탕(疙瘩湯)이라고 하며, 토마토와 달걀로 만드는 시홍스지단탕(西紅柿雞蛋湯)을 베이스로 한다.[13]
이탈리아 요리 중에서도 뇨키 같은 파스타 부류에서 비슷한 형태를 한 것이 있고, 미국 요리 중에서도 덤플링(Dumplings)이라는 동그랗게 빚어 고기 국물에 넣어 삶아먹는 형태를 한 요리가 존재하는데(Chicken Stew with Dumplings),[14] 미군에서 1943년까지 취사병들에게 보급해서 교육시킨 'TM 10-405, The Army Cook'라는 군용 요리책에 'Chicken Stew with Dumplings'이라는 치킨 스튜에 넣는 레시피가 나올 정도로 대중적이다. 이 덤플링은 반죽에 밀가루, 베이킹 파우더, 소금, 후추와 더불어 돼지 기름이 들어가는 것이 거의 빵 반죽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요리 재현. 캐나다에도 '프리코(Fricot)'라는 전통 음식이 있는데, 유럽인들의 북미 정착 초기부터 먹어온 나름 유서 깊은 음식이라고 한다. 요리 재현
일본 요리에서는 스이톤(水団, すいとん)이라고 부른다.[15] 수제비의 전신에 해당하는 것은 꽤 오래 전부터 존재했으나, 밀가루 비슷한 게 보급되어 분식이 가능해진 건 에도 시대 쯤부터로, 이때 스이톤 전문점이 생겼다고 한다. 보면 지역별로 간장, 된장 등 국물 재료가 다르고, 반죽도 수제비처럼 손으로 뜯은 것부터 경단처럼 만든 것, 만두소를 넣은 만두국 가까운 것, 밀가루풀을 국자로 떠넣어 만든 흐늘흐늘한 것 등 제각기였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 때는 밀가루를 구할 수 없어서 콩가루, 옥수수가루, 수수가루 등 별별 걸로 다 만들었고, 땔감이 부족해 속이 설익은 상태로 나오기도 했다. 국물과 건더기 낼 재료도 부족해 그냥 맹물이나 소금물에 끓이거나, 일본에서 구황 식품 수준으로 잘 먹지 않는 고구마 줄기 같은 것을 쓰기도 했다고. 맛의 달인에서도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
히말라야 지역에서도 '뗌뚝'이라는 이름의 비슷한 음식이 있다. 이는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2와 프리한 19 393화에서도 소개되었다.
응용으로 별개의 국물 요리를 끓일 때 다 먹고 남은 국물에 수제비 반죽을 넣어서 먹는 등, 사리처럼 활용할 때도 있다.
몇몇 매운탕 집에서는 사리 개념으로 수제비 반죽을 넣어주거나, 아예 처음부터 넣고 먹게 해주기도 한다.
최진실이 가장 좋아했던 그리고 가장 싫어했던 음식이라고 한다. 본래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출신인 최진실은 이후 연예인으로 자수성가하여 부유층으로 신분 상승을 했는데, 회식 자리에서 수제비는 쳐다보기도 싫다며 기자들에게 투정을 부린 바가 있다. 이게 논란이 되자 결국 최진실은 "빈곤하신 분들을 조롱했던 것은 아니고 제가 단지 수제비가 너무 지겨워서 그랬던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들께 죄송합니다."라며 사과했다. 사실 이건 딱히 최진실의 잘못이라 보긴 어렵고, 단지 최진실이 말실수를 했던 것에 불과하다.[16] 그러면서도 종종 친한 후배들에게 수제비를 만들어주곤 했는데, 최진실이 사망한 이후 신애는 진실이 언니가 수제비를 만들어주곤 했다면서 그녀 스타일로 고추장을 푼 수제비를 만들어 선보이기도 했다.
수제비를 기피하는 모습은 앞서 말한 빈곤한 시절 밀가루와 대충 끓인 물로 수제비를 만들어 끼니를 떼워야 했던 것을 기억하는 전쟁 직후 세대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라면과 함께 끓이면 라제비라는 요리가 된다. 옛날 분식집에선 자주 보이던 메뉴였으나 요즘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강남역 인근에는 아직 라제비로 유명한 분식집이 존재한다. 사실 라제비나 (라면과 소면을 함께 끓이는) 라국수 등의 요리는 한국에서 인스턴트 라면이 그리 값싸지 않은 음식이던 시절, 라면보다 싼 국수나 밀가루 수제비를 넣어 양을 불려 배를 채우기 위해 많이 먹었던 음식이므로 오히려 라면이 저렴한 먹거리의 대명사가 된 이후에는 많이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다.[10] 무엇보다도 라면(유탕면)과 수제비, 또는 건면은 면이 익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르고[11] 또 하나 분량의 라면 스프에 면을 더 넣어 양을 불리면 맛이 싱겁고 밍밍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12]
결국 분식집 등에서 맛있게 먹을 만한 음식으로 내놓는 라제비나 라국수는 라면과 수제비를 따로 넣어 익히는 시간을 조절하고, 라면 하나 분량의 스프로는 모자란 맛을 벌크로 추가 구매한 스프를 더 사용한다거나 가능하면 따로 육수와 양념, 고명 등을 사용하여 보충하는 등 그 식당의 특별한 메뉴를 만들기 위해 나름의 수고를 들여 복잡한 조리 과정을 거친 것이다. 하나 일반 가정에서 간편식으로 라면을 끓이면서 저렇게 귀찮은 일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므로, 당연히 영 맛 없는 음식이 된다. 쌀값과 라면값이 싸진 이상 국물에 밥을 말아먹거나 처음부터 라면을 2개 끓여먹는 쪽이 훨씬 간단하고 맛있는 것.
지역에 따라 국물이나 반죽 모양이 특이한 요리가 있다. 해안 지방에서는 조개나 북어 등으로 국물을 우리거나, 아예 미역국 같은 국물에 반죽을 올갱이 모양으로 만들어서 넣기도 한다. 내륙에서는 김치나 고춧가루를 푼 새빨갛고 매콤한 국물도 있고, 된장국에 반죽을 넣기도 하며, 아예 반죽 자체를 생략하고 걸쭉하게 푼 밀가루를 국자로 떠서 꿇는 국물에 부어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하면 쫄깃한 수제비가 아니라 흐늘흐늘한 아주 연한 수제비가 된다.
밀가루를 반죽하고 일일이 뜯는 것이 귀찮다면 만두피를 이용해도 좋다. 얇고 야들야들한 식감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쪽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냥 시중에 있는 만두피를 2등분해서 분리해 넣으면 끝. 수제비라기 보다는 넓은 파스타면 같은 느낌이 난다.
중국 요리 중에도 있는데 거다탕(疙瘩湯)이라고 하며, 토마토와 달걀로 만드는 시홍스지단탕(西紅柿雞蛋湯)을 베이스로 한다.[13]
이탈리아 요리 중에서도 뇨키 같은 파스타 부류에서 비슷한 형태를 한 것이 있고, 미국 요리 중에서도 덤플링(Dumplings)이라는 동그랗게 빚어 고기 국물에 넣어 삶아먹는 형태를 한 요리가 존재하는데(Chicken Stew with Dumplings),[14] 미군에서 1943년까지 취사병들에게 보급해서 교육시킨 'TM 10-405, The Army Cook'라는 군용 요리책에 'Chicken Stew with Dumplings'이라는 치킨 스튜에 넣는 레시피가 나올 정도로 대중적이다. 이 덤플링은 반죽에 밀가루, 베이킹 파우더, 소금, 후추와 더불어 돼지 기름이 들어가는 것이 거의 빵 반죽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요리 재현. 캐나다에도 '프리코(Fricot)'라는 전통 음식이 있는데, 유럽인들의 북미 정착 초기부터 먹어온 나름 유서 깊은 음식이라고 한다. 요리 재현
일본 요리에서는 스이톤(水団, すいとん)이라고 부른다.[15] 수제비의 전신에 해당하는 것은 꽤 오래 전부터 존재했으나, 밀가루 비슷한 게 보급되어 분식이 가능해진 건 에도 시대 쯤부터로, 이때 스이톤 전문점이 생겼다고 한다. 보면 지역별로 간장, 된장 등 국물 재료가 다르고, 반죽도 수제비처럼 손으로 뜯은 것부터 경단처럼 만든 것, 만두소를 넣은 만두국 가까운 것, 밀가루풀을 국자로 떠넣어 만든 흐늘흐늘한 것 등 제각기였다고 한다.
태평양 전쟁 때는 밀가루를 구할 수 없어서 콩가루, 옥수수가루, 수수가루 등 별별 걸로 다 만들었고, 땔감이 부족해 속이 설익은 상태로 나오기도 했다. 국물과 건더기 낼 재료도 부족해 그냥 맹물이나 소금물에 끓이거나, 일본에서 구황 식품 수준으로 잘 먹지 않는 고구마 줄기 같은 것을 쓰기도 했다고. 맛의 달인에서도 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
히말라야 지역에서도 '뗌뚝'이라는 이름의 비슷한 음식이 있다. 이는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2와 프리한 19 393화에서도 소개되었다.
응용으로 별개의 국물 요리를 끓일 때 다 먹고 남은 국물에 수제비 반죽을 넣어서 먹는 등, 사리처럼 활용할 때도 있다.
몇몇 매운탕 집에서는 사리 개념으로 수제비 반죽을 넣어주거나, 아예 처음부터 넣고 먹게 해주기도 한다.
최진실이 가장 좋아했던 그리고 가장 싫어했던 음식이라고 한다. 본래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출신인 최진실은 이후 연예인으로 자수성가하여 부유층으로 신분 상승을 했는데, 회식 자리에서 수제비는 쳐다보기도 싫다며 기자들에게 투정을 부린 바가 있다. 이게 논란이 되자 결국 최진실은 "빈곤하신 분들을 조롱했던 것은 아니고 제가 단지 수제비가 너무 지겨워서 그랬던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들께 죄송합니다."라며 사과했다. 사실 이건 딱히 최진실의 잘못이라 보긴 어렵고, 단지 최진실이 말실수를 했던 것에 불과하다.[16] 그러면서도 종종 친한 후배들에게 수제비를 만들어주곤 했는데, 최진실이 사망한 이후 신애는 진실이 언니가 수제비를 만들어주곤 했다면서 그녀 스타일로 고추장을 푼 수제비를 만들어 선보이기도 했다.
수제비를 기피하는 모습은 앞서 말한 빈곤한 시절 밀가루와 대충 끓인 물로 수제비를 만들어 끼니를 떼워야 했던 것을 기억하는 전쟁 직후 세대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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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예 칼국수를 수제비라고 부르는 지방도 있다. 그 지방에서는 위 그림과 같은 수제비는 '뚝수제비'라고 구분해서 부른다.[2] 뇨키가 서양의 수제비라고 할 정도로 흡사하다.[3] 밀 자체는 보리와 함께 양맥(兩麥)이라 불리며 이모작용 작물 및 밭작물로 널리 재배되어 흔한 곡물이었으나, 수차의 보급이 미비하고 절구나 연자방아로 제분을 했기 때문에 밀의 대량제분이 불가능해서 밀가루가 귀했으며, 밀은 대부분 밀밥을 짓는 용도로 쓰였다.[4] 당시엔 '운두병(雲頭餠)', '영롱발어', '산약발어' 같은 명칭으로 칭해졌다.[5] 한국전쟁 발발로 본격화된 미국의 한국 원조는 미국의 주한(駐韓) 원조사업단이 1980년 9월 한국에서의 사업을 완전히 마무리하고 공식 철수함으로써 종료되었다. 미국의 한국 원조 사업이 무려 30년 넘게 이어졌던 것이다.[6] 전후 시기 미국 본토의 잉여 농산물이 얼마나 많았던지, 1953년 기준 미국의 밀과 면화 원조 적체량이 1년치 이상에 달할 정도 였다고 한다. 이런 심각한 국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 미국이 열심히 원조 물자를 보냈던 것이다.[7] 군마현, 이바라키현, 도치기현[8] 빵 만들 때 글루텐을 활성화시키는 것과 같다.[9] 그래서 마트에서 파는 수제비 가루 중에는 아예 감자 전분이 섞여서 나오는 제품이 많다. 서양 수제비라고 할 수 있는 뇨키도 반죽에 감자를 으깨서 넣는다.[10] 의외로 90년대 무렵에도 가난한 집에서는 라국수나 라제비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종종 있기는 한데, 이 무렵만 되어도 정말 라면값이 비싸서 양을 불려먹었다기 보다는 집에 남아있는 국수나 밀가루를 처리할 겸 라면을 끓일 때 넣었다거나, 라면값이 조금 비싸던 어린 시절~젊은 시절의 습관에 익숙해진 부모 세대에게 라면을 먹을 때 한 사람당 한 개씩 끓이는 것은 낭비라는 고정관념이 생겨 (정작 값을 따지면 라면값이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닌데도) 국수나 수제비 따위를 넣어 끓였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그리고 역시나 이런 음식은 맛이 없어서 평소 라국수만 자주 먹던 아이가 라면만 끓인 것을 먹어보자 평소와는 달리 너무 맛있어서 몇 개를 연거푸 먹어치웠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11] 물론 이 문제는 물을 일단 끓인 후 천천히 익는 수제비나 소면을 먼저 넣고, 나중에 라면을 넣는 것으로 비교적 쉽게 해결이 가능하다. 하지만 어차피 익는 시간 차이가 크지 않은 소면과 라면의 경우 귀찮으니 그냥 같이 넣어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고, 무엇보다 한 번 튀겨 완전히 익혀놓은 라면과는 달리 소면은 가능하면 삶은 후 한 번 행궈내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등 조리법이 다르기 때문에 라면과 함께 면을 삶으면 맛의 저하를 피하기는 어렵다.[12] 면이나 수제비의 양이 늘어난 만큼 모두 익히려면 물의 양도 늘어나야 하니 당연히 국물의 맛은 싱거워진다. 또 반대로 국물이 싱거워지는 걸 막겠다고 물을 조금만 늘렸다가 면에 비해 국물이 적어서 대부분의 국물을 면이 흡수해서 죽 같은 모양새가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13] 김풍이 냉장고를 부탁해 32회에서 선보인 바 있다. 그 후 김풍의 레시피를 베이스로 하여 정형돈이 냉장고를 부탁해 1주년 특집에서 선보인 바가 있다.[14] 다만 요리명이 아닌 그냥 'Dumplings'라고 검색하면 차이니즈 덤플링이라고 만두가 주로 검색된다. 엠빠나다 같은 남미식 만두도 북미에선 그냥 'Dumpling'이라고 싸잡아 부르는 경우가 있다.[15] 한국의 전통 음식 중에도 수단이 있다. 다만, 음료수 수단도 있기에 보통 구분하기 위해 떡수단이라고 부른다.[16] 비슷한 사례로 이명박도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출신인지라 이후 현대건설 사장 → 대한민국 국회의원 → 서울특별시장 → 대한민국 대통령 순으로 자수성가를 하여 엄청난 부유층으로 신분 상승을 하게 되었는데, 청와대에서 공무원들에게 "나는 거의 모든 음식들을 매우 좋아하지만 예외적으로 잡곡밥은 매우 싫어한다. 그 옛날 내가 가난했던 시절에 지겹도록 먹었기 때문이었거든!"이라고 언급했을 정도로 유일하게 싫어하는 음식이었다고 한다. 당연하겠지만 청와대에서는 이명박의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그의 밥상에 절대로 잡곡밥을 차리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