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는 서리와 눈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언 땅 위에 고운 꽃을 피워 맑은 향기를 뿜어낸다. 매화는 온갖 꽃이 미처 피기도 전에 맨 먼저 피어나서 봄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 준다. 매화는 창연한 고전미가 있고 말할 수 없이 청고(淸高)하여 가장 동양적인 인상을 주는 꽃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추위를 이기고 꽃을 피운다 하여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삼아 정원에 흔히 심어졌고 시나 그림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하였다.
매화는 이를 둘러싼 우의(寓意)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아칭(雅稱)이 있다. 이를 내용별로 분류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이른 봄 다른 꽃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의 미덕에 의한 우의로 화형(花兄)·화괴(花魁)·백화괴(百花魁) 등의 별명이 있다. 화형은 먼저 피는 것이 형이 된다는 해석이고 괴(魁)는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또 일지춘(一枝春)·일지춘색(一枝春色)·동방제일지(東方第一枝)·철간선춘(鐵幹先春) 등도 이와 같은 뜻에서 나온 것이다.
둘째로 엄한(嚴寒)에도 굴하지 아니하고 봄마다 향기 높은 꽃을 피우는 매화의 생리적 특성에서 유래하는 '불굴의 절조' '속세를 초월한' 등의 우의에 의한 것으로는 세한(歲寒)의 맹서, 군자, 청우(淸友), 청객(淸客) 등이 이에 해당한다.
해남 매화단지
셋째로 단단하게 생긴 늙은 줄기, 차갑게 말라서 거친 가지 등 매화나무 특유의 외관이나 꽃의 색깔·향기 등의 이미지에 의한 것으로 빙기옥골(氷肌玉骨)·소영(疎影)·암향(暗香) 등이 있다.
그 밖에 매화는 옛날부터 문인묵객(文人墨客)의 사랑을 받은 꽃으로 호문목(好文木)이라는 별명도 얻고 있다. 이것은 중국 진(晋)나라 때에 문학이 한창 성할 때 매화가 아름답게 피었다가 문학이 쇠퇴하자 그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어 그런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또는 진(晋)나라 무제(武帝)가 공부에 힘을 쏟으면 매화가 꽃을 피우고 공부를 게을리하면 피지 않았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도 한다.
또 화암(花菴)은 《화암수록》에서 "봄에 피는 매화를 고우(古友)라 하고 섣달에 피는 매화를 기우(奇友)라 한다"고 했다.
매화나무에는 많은 종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지 전에 피는 것을 조매(早梅)라 한다. 또는 열매가 일찍 맺는 것을 조매라 부른다는 설명도 있다. 봄이 오기 전 눈이 내릴 때 핀다고 하여 설중매(雪中梅)라고 하고 한매(寒梅) 또는 동매(冬梅)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그 가지가 구부러지고 푸른 이끼가 끼고 비늘 같은 껍질이 생겨 파리하게 보이는 것을 고매(古梅)라 하여 귀중하게 여긴다. 강매(江梅)는 강변에서 자라는 매화를 말하기도 하나 문헌에 따라서는 매화 열매가 떨어져서 들에 나서 한 번도 옮겨 심거나 접붙이를 하지 않는 야생의 것을 말한다는 설명도 있다.
꽃봉오리가 풍성하고 잎이 층을 이루면 중엽매화(重葉梅花)라 하고 가지와 줄기가 녹색이면 녹엽매(綠葉梅)라 한다. 원앙매(鴛鴦梅)는 한 꼭지에 두 개의 열매가 열리는 것을 말하고 둥글고 작은 열매가 열리면 소매(消梅)라고 하였다.
그 밖에 옛 책에는 매화의 종류로서 쌍매(雙梅)·수지매(垂枝梅)·녹악매(綠萼梅)·자매(紫梅)·동심매(同心梅)·추지매(麤枝梅)·홍매(紅梅)·주매(朱梅)·백매(白梅)·춘고초(春告草) 등 이름이 많다.
매화에는 도심(倒心)이란 이름을 가진 게 있는데 꽃이 모두 거꾸로 드리워진다고 한다. 이는 다음과 같은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강가에 한 그루 매화가 드리워 피었네 江邊一樹垂垂梅
- 두보(杜甫)의 시 가운데서한 봉오리만 등진다 해도 오히려 의심할 만한데 一花纔背尙堪猜
어찌 드리우고 드리워져 다 거꾸로 피었느냐 胡乃垂垂盡倒開
이런 매화는 아마 절품(絶品)일 것이다. 송나라 범성대(范成大)의 《매보(梅譜)》에 보충할 만하다.
- 이익(李翼), 《성호사설(星湖僿說)》 가운데서매화는 난(蘭)·국(菊)·죽(竹)과 더불어 사군자(四君子)라 일컫기도 하고 불로상록(不老常綠)의 솔·대와 더불어 세한삼우(歲寒三友)라 하기도 한다. 또 매화와 대나무를 이아(二雅)로, 매화와 대나무와 솔을 삼청(三淸)으로, 매화·대나무·난초·국화·연꽃을 오우(五友)로 부르기도 한다.
매화의 원산지는 중국 사천성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문헌상에 나타난 매화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대무신왕(大武神王) 24년(41년) 8월에 "매화꽃이 피었다"라는 기록이다.
그리고 《삼국유사》에서 승려 일연(一然)은 신라에 불교가 전파된 것을 매화로 상징하여 표현하였다.
금교엔 눈이 쌓이고 얼음도 풀리지 않아 雪擁金橋凍不開
계림에 봄빛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는데 鷄林春色未全廻
영리한 봄의 신은 재주도 많아 可怜靑帝多才思
모례(毛禮)의 집 매화에 먼저 꽃을 피웠네 先着毛郞宅裏梅
이 시는 신라의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을 나타낸 것이다. 즉 일연은 불교가 들어온 사실을 시화(詩化)하면서 높은 상징적 수법을 쓰고 있다. 여기에서 눈덮인 금교와 계림은 아직 불법의 혜택을 받지 못한 신라 땅을 가리킨다. 봄은 불법을, 그리고 봄의 신인 청제는 법신(法身)을 상징한다. 그 법신이 모례(毛禮)의 집 매화꽃으로 화현(化現)된 것이다. 즉 여기에서 매화꽃은 불법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문헌상에서는 고려 문종(1047~1082년) 연간 이전부터 재식되고 있었고 충숙왕 때에는 중엽매(重葉梅)가 수입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당대(唐代)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와 삼국시대에 널리 재배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그때는 매화를 심으면 하나같이 모두가 오얏이 된다고 믿어서 매화를 재배할 때에는 접을 붙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처음에는 매화의 열매를 약용으로 사용했던 중국의 영향으로 관상용보다 실용에 더 비중을 두고 재배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예서라고 할 수 있는 강희안의 《양화소록》에는 도하(都下)에서는 천엽홍백매(千葉紅白梅), 영남과 호남에서는 단엽백매(單葉白梅)가 심어지고 있었다는 것과 복숭아 대목에 매화를 접목하는 등의 진전된 접목법(接木法)이 수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매화에 대한 애호는 대단했다. 특히 선비들이 매화를 숭상하고 귀하게 여겼다. 전술한 강희안의 〈화목구품(花木九品)〉에서는 솔·대·연·국화와 함께 1품으로 분류되어 있고 화암(花巖)의 〈화목구등품제(花木九等品第)〉에서도 똑같이 1등으로 분류되어 있다. 꽃을 읊은 한시에 있어서 매화가 소재로 등장하는 빈도는 다른 꽃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풍류왕자인 안평대군(安平大君)의 〈비해당사십팔영(匪懈堂四十八詠)〉에서도 〈매창소월(梅窓素月)〉을 가장 먼저 읊고 있다. 또 시조에 있어서도 복숭아꽃 다음으로 그 출현 빈도가 높다. 또 그림에 있어서도 어떤 꽃보다도 가장 많이 그려졌던 꽃이 바로 매화였다.
옛날 우리나라 명사들의 별호에는 꽃과 관련된 글자를 흔히 사용하고 있는데 그 중에는 매(梅)자가 들어가 있는 것이 대단히 많다. 《한국인명자호사전(韓國人名字號辭典)》(이두희, 1988)에 수록된 인사를 대상으로 호를 조사한 결과 매(梅)자가 들어가 있는 것이 163이고 다음 국(菊)이 87, 난(蘭)이 49, 행(杏)이 45, 하(荷)가 37, 연(蓮)이 32로 나타났다. 그리고 송(松)은 377, 죽(竹)은 277이었다.
뿐만 아니라 매화의 고운 자태, 그 맑은 향기, 그 조촐한 지조를 취하여 기생들의 이름에도 매화를 상징해서 이름을 많이 지었는데, 옥매(玉梅)·설매(雪梅)·월중매(月中梅)·매향(梅香)·매화(梅花) 등이 있다. 저 유명한 《춘향전》에 나오는 춘향의 어미는 월매(月梅)이다.
일본에는 백제 사람 왕인(王仁)이 응인천황(應仁天皇, 270~312년) 시대에 매화를 약용으로 일본으로 가져갔다는 설이 있다.1) 그리고 일본의 고전인 《고금집(古今集)》의 서(序)에 백제의 귀화인 왕인이 인덕천황(仁德天皇)이 즉위하던 해(313년)에 그 즉위를 축하하기 위하여 지은 시가 전해지고 있다.
나니와쯔(難波津)에 피어 있는 꽃이여, 겨울도 지나고 이젠 봄이라고 피어 있는 꽃이여. (難波津に咲くやこの花, 冬こもリ今は春べと咲くやこの花)
그런데 위 시에서 '꽃'은 매화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왕인이 매화를 가지고 왔거나 매화를 감상했다거나 매화를 심었다고 하는 증거가 없다고 하여 이를 부정하고 이 시에서의 꽃은 벚꽃이라고 주장하는 설도 있다.2)
왕인의 후예는 지금도 가문의 행사로 매년 3월 9일이면 박사 왕인사(王仁社)에서 홍매(紅梅) 행사(行事)를 개최하는데 이 행사에는 내빈을 초청하여 조상 왕인상(王仁像)과 홍매를 전시한다고 하며 이는 조상이 홍매를 즐겨하던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3)
전(傳) 왕 인묘 입구일본 히라카타
왕인박사의 묘
매화를 일본말로는 '우메(ゥメ)'라고 하는데 그 어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으나 우리말의 '매'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4)
우리나라 《양화소록》에 기록된 접목법은 일본(문정 연간, 1818~1829년)에서 인용되었고 《운승원매보(韻勝園梅譜)》(1811년)에는 품종에 조선매(朝鮮梅)가 들어 있다.
매화는 현재 중화민국(대만)의 국화로 되어 있다. 원래 중국에서는 모란을 대단히 애호하고 있었으나 1929년에 법령으로서 매화를 국화로 지정했다. 현재 중국에서는 매화를 모란과 함께 중국의 국화로서 유력한 후보로 검토 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