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 지도 ]⠀
|
|
|||
위치
|
|||
높이
|
845m (천황봉)[1]
|
||
산맥
|
차령산맥
|
||
좌표
|
북위 36° 20′ 36″
동경 127° 12′ 22″ |
||
면적
|
60.98㎢
|
||
위성사진
|
|||
|
|||
계룡산 국립공원
|
|||
지정일
|
1968년 12월 31일 (3호)
|
||
관리주체
|
|||
사무소
|
동학사(충남)
|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동학사로
327-6 042) 825-3002 (본소) |
|
갑사(충남)
|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갑사로 519
041) 857-5178 (갑사분소) |
||
수통골(대전)
|
대전광역시 유성구 수통골로 47
042) 825-3006 (네이처센터) |
||
깃대종
|
호반새 |
||
깽깽이풀 |
|||
홈페이지
|
|
사진 좌측 통신시설이 설치된 높은 봉우리가 정상인 천황봉이다.
|
충청남도 공주시(계룡면, 반포면), 계룡시(신도안면), 대전광역시 유성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845m 이며, 대한민국에서 3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정상인 천황봉에는 통신선이 있을 뿐만 아니라 3군 본부가 모인 계룡대가 훤히 보이기 때문에 민간인 통제구역이다. 같은 이유로 머리봉과 쌀개봉도 통제구역이다.[2] 그래서 민간인 등산객들에겐 관음봉이 계룡산의 실질적인 정상 봉우리이고, 따라서 동학사 쪽으로 관광객이 많다. 등산객들은 주로 동학사-은선폭포-관음봉 코스나 동학사-남매탑-삼불봉 코스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반대편인 갑사에도 관광객이 많은데 동학사-은선폭포-관음봉-삼불봉-갑사로 산을 아예 넘어버리는 코스도 존재한다. 이 코스에는 돌아오는 버스가 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관내의 수통골지구는 조금 더 가벼운 산책 삼아 나온 나들이객 위주. 동학사지구로 도보 이동은 가능하나 등산로가 직접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3]
대전 인근에 위치하며, 고도가 낮아서 가볍게 생각하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산이 생각보다 험한편이다.[4][5]
정상인 천황봉에는 통신선이 있을 뿐만 아니라 3군 본부가 모인 계룡대가 훤히 보이기 때문에 민간인 통제구역이다. 같은 이유로 머리봉과 쌀개봉도 통제구역이다.[2] 그래서 민간인 등산객들에겐 관음봉이 계룡산의 실질적인 정상 봉우리이고, 따라서 동학사 쪽으로 관광객이 많다. 등산객들은 주로 동학사-은선폭포-관음봉 코스나 동학사-남매탑-삼불봉 코스로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반대편인 갑사에도 관광객이 많은데 동학사-은선폭포-관음봉-삼불봉-갑사로 산을 아예 넘어버리는 코스도 존재한다. 이 코스에는 돌아오는 버스가 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관내의 수통골지구는 조금 더 가벼운 산책 삼아 나온 나들이객 위주. 동학사지구로 도보 이동은 가능하나 등산로가 직접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3]
대전 인근에 위치하며, 고도가 낮아서 가볍게 생각하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산이 생각보다 험한편이다.[4][5]
한원에 "백제 동쪽에 계람산(鷄籃山)이 있다." 하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의 오악(五嶽) 중 서악(西嶽)으로 받들었고 제사를 지내는 명산으로 정했다고 한다.
조선 태조 때 개경에서 계룡산 남쪽 신도안(新都案)[6]으로 도읍지를 옮기려 하였으나, 하륜이 반대하여 신도안 대신 한양으로 도읍지를 변경하였다. 훗날 신도안 지역에는 3군 본부(계룡대)가 들어서 계룡시가 설치되었다.
조선 초 도읍지 후보였음과 정감록의 영향으로 정씨 왕조가 여기를 도읍으로 삼는다는 전설로 인해 계룡산 일대가 '길지(吉地)'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한때 많은 소규모 종교단체들이 특히 신도안에 난립한 적이 있다. 특정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정감록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언젠가 미래의 수도가 된다는 신도안으로 이주하여, 없던 마을이 하루 아침에 생기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도 여기를 배경으로 하는 장면이 많다. 원불교에서도 신도안 지역이 나중에 불교의 중심지가 된다 믿고 매우 중시하여, 1967년 신도안에 삼동원(三同園)이라는 종교시설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다만 삼군본부가 들어서서 신도안 밖으로 이주할 때, 원불교 교단은 "군사시설이 미래에 다른 곳으로 이전할 경우, 삼동원 터를 최우선적으로 원불교에 반환한다."라는 조건으로 매각하여, 언젠가 복귀할 근거를 마련하였다.
조선 태조 때 개경에서 계룡산 남쪽 신도안(新都案)[6]으로 도읍지를 옮기려 하였으나, 하륜이 반대하여 신도안 대신 한양으로 도읍지를 변경하였다. 훗날 신도안 지역에는 3군 본부(계룡대)가 들어서 계룡시가 설치되었다.
조선 초 도읍지 후보였음과 정감록의 영향으로 정씨 왕조가 여기를 도읍으로 삼는다는 전설로 인해 계룡산 일대가 '길지(吉地)'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한때 많은 소규모 종교단체들이 특히 신도안에 난립한 적이 있다. 특정종교인이 아니더라도, 정감록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언젠가 미래의 수도가 된다는 신도안으로 이주하여, 없던 마을이 하루 아침에 생기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문열의 황제를 위하여도 여기를 배경으로 하는 장면이 많다. 원불교에서도 신도안 지역이 나중에 불교의 중심지가 된다 믿고 매우 중시하여, 1967년 신도안에 삼동원(三同園)이라는 종교시설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다만 삼군본부가 들어서서 신도안 밖으로 이주할 때, 원불교 교단은 "군사시설이 미래에 다른 곳으로 이전할 경우, 삼동원 터를 최우선적으로 원불교에 반환한다."라는 조건으로 매각하여, 언젠가 복귀할 근거를 마련하였다.
동학사지구와 갑사지구는 탐방로로 연결되어 있다. 수통골지구는 동학사지구와 밀목재로 연결되어 지리적으로는 계룡산의 일원이나, 법정탐방로로는 직접 연결되지 않고 도로로 도보 이동하여야 한다.
계룡산을 제대로 구경하고 싶다면 동학사와 갑사를 잇는 코스가 가장 좋다.
동학사를구경한 후 남매탑이 있는 상원암에서 휴식을 취한 후 삼불봉고개만 올라도 계룡산의 주봉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삼불봉을 오른 후 자연적으로 생긴 능선이 마치 성을 쌓아서 만든 성곽과 흠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자연성릉길을 걷다보면 관음봉 올라가는 급계단길을 만나게 된다.
도합 507계단을 오르면 관음봉에 오를 수 있으며 중간중간의 쉼터에서 연천봉 고개로 쉬어내려 갔다가 낙조가 아름다우며 이성계가 천지신명께 기원하고 한양도읍을 신선께 명 받았다는 연천봉을 오른 후 갑사로 하산하는 코스이다.
계룡산을 제대로 구경하고 싶다면 동학사와 갑사를 잇는 코스가 가장 좋다.
동학사를구경한 후 남매탑이 있는 상원암에서 휴식을 취한 후 삼불봉고개만 올라도 계룡산의 주봉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삼불봉을 오른 후 자연적으로 생긴 능선이 마치 성을 쌓아서 만든 성곽과 흠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자연성릉길을 걷다보면 관음봉 올라가는 급계단길을 만나게 된다.
도합 507계단을 오르면 관음봉에 오를 수 있으며 중간중간의 쉼터에서 연천봉 고개로 쉬어내려 갔다가 낙조가 아름다우며 이성계가 천지신명께 기원하고 한양도읍을 신선께 명 받았다는 연천봉을 오른 후 갑사로 하산하는 코스이다.
관련 문서: 갑사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일원. 호국불교 사상의 상징인 갑사가 위치해 있다. 산행객보다는 사찰탐방이나 인근 계곡을 들리는 관광객 위주. 잔디로 된 고산고개인 금잔디고개와 삼불봉이 있다. 갑사까지는 무장애탐방로(보도블럭)로 노약자/장애인 탐방이 원활하나, 갑사부터는 탐방로 대부분이 바위로 되어 있어 여름과 겨울철에 주의를 요한다. 입구부터 갑사까지는 편도 약 25분, 삼불봉까지는 편도 약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덕명동 일원. 대전 시계 내에 위치해 있어 등산객보다는 간단한 산책을 하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오리요리로 유명한 동네로 맛집이 많다.수통폭포까지는 데크를 설치해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으나 일부 구간에 경사가 있어 보행장애인의 탐방에는 주의가 필요. 수통폭포에서 갈라지는 도덕봉 코스는 탐방로가 협소하고 계단이 많으며 지형적인 원인으로 안개가 자주 발생해 단독 산행은 안전하지 않다. 입구부터 수통폭포까지는 편도 약 20분, 도덕봉까지는 편도 약 1시간 10분, 빈계산까지는 편도 약 1시간이 소요된다.
계룡산에 있는 절로는 동학사, 갑사, 신원사, 마곡사, 여명사 등이 있다. 특히 공주시 반포면의 동학사와 계룡면의 갑사가 양대 절로 유명하다.
인근에 계룡대가 있다. 충남의 대학교가 아니고 국군의 3군 통합 군사 기지다. 명칭인 鷄龍臺는 당연히 계룡산에서 따왔다. 이 계룡대 때문에 민간인 출입 금지구역이 상당히 많다. 이 곳에는 3군 통합 군사기지라는 중요시설이 있으니 진짜로 출입 금지구역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다른 곳의 출입 금지구역은 '길 잃었다.' 식으로 좋게 좋게 끝날 수도 있지만, 여기선 진짜 간첩, 테러분자 등으로 오해받기 딱 좋다. 게다가 당연히 최우선 경비, 방어구역이기 때문에 작전 나오거나 경계 나온 군인들도 매우 많다.[7] 가끔씩 정말 산에서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은[8] 군인들이 누구냐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는 만큼 행동을 주의하자.
인근에 계룡대가 있다. 충남의 대학교가 아니고 국군의 3군 통합 군사 기지다. 명칭인 鷄龍臺는 당연히 계룡산에서 따왔다. 이 계룡대 때문에 민간인 출입 금지구역이 상당히 많다. 이 곳에는 3군 통합 군사기지라는 중요시설이 있으니 진짜로 출입 금지구역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다른 곳의 출입 금지구역은 '길 잃었다.' 식으로 좋게 좋게 끝날 수도 있지만, 여기선 진짜 간첩, 테러분자 등으로 오해받기 딱 좋다. 게다가 당연히 최우선 경비, 방어구역이기 때문에 작전 나오거나 경계 나온 군인들도 매우 많다.[7] 가끔씩 정말 산에서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은[8] 군인들이 누구냐고 물어보는 경우도 있는 만큼 행동을 주의하자.
계룡산의 독특한 지형과 자연환경은 예로부터 영험한 기운이 모이는 곳으로 여겨져 왔으며, 이러한 이유로 많은 무속인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점집과 굿당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하여 군사 기지가 있기는 해도 계룡산을 영산으로 취급하는 무속인들이 24시간 출퇴근하는 곳이라서 인적은 끊이지 않는다. 좀 수상해 보인다고 모조리 거수자 취급하면 끝이 없을 정도. 2014년 시점에서 무속인들의 지나치게 많이 드나드는 상황이 문제가 되었다. 군사보안 문제가 아니라 무속인이 산에 올라가 제사상 차리고 치성 드리면서 남기는 쓰레기와 낙서 때문에 생긴 환경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그럴싸하게 보이는 바위가 있다 싶으면 닥치고 상 차리고 촛불 켜고 치성을 올리니 미관상에도 보기 안 좋다. 국립공원 관리공단에서 무속행위를 단속하고 있기는 한데 인원이 부족해서 단속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나마 지금이야 단속을 하니까 이 정도고 90년대에는 쓰레기로도 모자라 돼지머리 등이 대놓고 굴러다녔다. 너무 심하다보니 96년부터는 무속오염이라 부를 만큼 사회문제가 되어 단속도 시작했는데, 당시 무속인들은 공무원들이 퇴근할 시간을 틈타 몰래 산에 올라가서 제사를 치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나마 지금은 사진처럼 거하게 차려놓지는 않게 된 것만 해도 꽤 나아졌다.[9]